에그EGG #17 by 비와이슬


  처음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통령실장이 입을 열었다.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흐르는 전기를 돈과 동일시한다는 건 좀 심한 비약 같습니다. 전기는 저장하는 게 곤란하지 않습니까? 겨우 블로그나 E-net 상에서 주고받는 미세한 전기를 가지고 화폐가 쓸모없어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기를 가지고 물을 전기분해하면 되지요. 그때 발생하는 수소는 이미 저장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HNC(Hydrogen Nano Cage). 명칭이 정확한가요? 수소를 저장하는 신물질은 개발되어 있지 않습니까? 수소가 곧 돈이자 석유인 셈이지요.”
  로렌스의 말에 굳은 표정이던 대통령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의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 기술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중요한 기술이니까요. 그리고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석유업계, 금융계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답변입니다.”
  “정중히 그리고 간곡하게 그 기술을 포기하실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각하께서 절대 포기하실 수 없으시다면 얼마간 보류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와 많은 검토를 거칠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할 수 없이 로렌스 서머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통령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들러주세요.”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로렌스와 악수가 끝나자 대통령은 대통령실장을 향해 눈짓했다.   대통령실장이 로렌스를 밖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대통령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화폐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환률’을 생각 못했어요. 금본위 화폐가 아니라 전기 본위 화폐가 태어나겠군요.”
  “전 세계에 있는 투기세력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돈을 벌 수단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리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자가 ‘박테리아(수소생산 박테리아)’까지 아는 건 아니겠지요?”
  “모를 것 같습니다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보안을 더욱 철저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도 파악해서 막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요.”
  “알겠습니다.”
  “난 우리가 석유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이 발견된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일렉트릭웹’도 앱스토어처럼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어요. 우리는 모르는 사이 전세계를 재편할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네요. 가히 혁명이랄 수 있는 기술을…….”
  “경호인원을 늘리겠습니다. 관련자들에 대한 보안도 배로 늘려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그리고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야겠어요. 리즈가 지시해줘요.”
  “알겠습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대통령이 긴장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옆에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말이에요.”
  리즈가 웃으며 대통령의 손을 잡아주었다. 대통령은 피곤한 듯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주차장에서 자신의 비톨VTOL에 타자마자 로렌스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좌석에 앉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단축키를 눌렀다. 신호음이 떨어지자 로렌스가 말했다.
  “거절했습니다.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바로 전화를 끊었다.
  ‘가소로운…….’
  사람 좋아보이던 로렌스의 입가가 비웃음으로 채워졌다. 한국의 대통령. 훗! 어떤 괴로움을 겪을지 기대가 되었다.
그가 탄 비톨이 무장 비톨의 안내에 따라 청와대 영내를 벗어났다.


  가희는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함을 드러내며 한숨을 쉬었다. 큰 규모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훨씬 심했다.
  서둘러 슈트와 바지를 벗었다. 매끄러운 금속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슈트 개방.”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파워슈트가 열렸다. 가희는 반팔 티와 반바지 차림으로 슈트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몸의 굴곡을 그대로 본 따 만든 아이언메이든Iron maiden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 티셔츠를 벗었다. 반바지를 벗었다. 속옷 차림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가희의 몸매는 마치 보디빌더의 몸 같았다. 군살 하나 없이 균형 잡힌 근육이 마치 남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남자들의 우락부락한 근육처럼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누르면 튀어나올 것 같은 탄력과 힘이 느껴지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로서 그런 몸을 갖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분명했다.
  땀부터 씻어 내리고 싶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내의를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거울을 봤다.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이었지만 가슴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양손으로 가슴을 잡고 모아보았다. 평균으로 보아줄 수도 있었지만 몸매에 비해 아무래도 작았다. 맘에 들지 않았다. 운동으로 가슴을 키울 수 있었다면 최고로 멋진 가슴을 가졌을 텐데……. 수술 하지 않는 한 그건 불가능했다. 수술을 할 수도 있고 돈도 충분히 있었지만 경호원의 일을 수행하는 데는 가슴이 클수록 불편했다. 뛸 때도 격투할 때도 민첩성을 발휘하는데도 불리한 것이다.
  샤워기 물에서 김이 나자 몸을 물방울 영역 속으로 집어넣었다. 머리부터 전해져오는 따뜻한 온기. 눈을 감고 그 따뜻한 쾌감을 즐겼다.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열기를 느끼는데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B. 카스트라토.
  오늘 그가 자신에게 한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설마 자신에게 작업을 한 건가? 그럴 리가……. 그가 무엇 때문에 한낱 경호원에게 관심을 가질까? 아무 여자한테나 그런 식으로 대하는 자인가? 그렇다면 가희의 기준에 망할 놈이 하나 늘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것도 따로 떨어져 파티와 관계없음이 분명한 자신에게……. 멋진 남자인 건 분명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였다. 무엇보다 그는 성불구가 아닌가. 가희는 자신보다 약한 남자는 싫었다. B는 자신보다 약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 잘생긴 얼굴. 거기다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세련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
  가희는 의지적으로 B에 대한 기억을 털어버렸다. 샴푸를 하고 온 몸을 꼼꼼히 씻은 후에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말리며 달력을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 그 날이네.’
  피곤한 표정으로 가희는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권총처럼 생긴 주사기와 액체가 담겨있는 작은 주사약이 여러 개 있었다. 주사약 하나를 집어 주사기 위에 꽂았다. 약 표면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남성호르몬. 알코올 솜을 하나 뜯어서 팔에 문질렀다.
  가희는 유괘하지 않은 표정으로 주사기를 자신의 왼팔에 갖다댔다. 방아쇠를 당기자 ‘칙’하는 소리와 함께 액체가 팔속으로 주입되었다.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난소암, 전립선암, 유방암처럼 호르몬에 민감한 많은 암들이 정상 수치 이상의 안드로겐과 에스트로겐에 의해 촉진될 수 있었다. 애써 불안감을 지웠다. 해마다 최고 수준의 건강검진을 받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가슴이 작은 이유가 남성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고로 빠른 반응속도와 운동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근육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남성호르몬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가희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대통령을 보호해야 했다. 그 일을 위해서 이 정도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희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가슴, 인중 부근에 솜털도 짙어진 것 같았고 목소리도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성욕도 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B라는 남자와 자신이 바뀌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애도 아니고…….’
  가희는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불 꺼.”
  홈컴퓨터가 전등을 껐다.
  잠을 청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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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에그의 뒷 부분은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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