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14 by 비와이슬

4 빅샷 Big shot



  마담 리즈는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굴에 쓰고 있는 ‘미스틱’가면은 20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숨길 수 없는 눈빛은 짜증스러워 보였다.
  ‘꼭 사람을 오라가라야. 화상회의는 뭐에 쓰려고…….’
  검정색의 단정한 정장 차림에 수수한 모습이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20대 사무직 여성으로 보였다. 오직 목에 걸려있는 출입증만이 그녀가 중요인물임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엔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풍겼다. 대통령이 라일락 향기를 좋아하는 때문이었다. 리즈는 귀찮은 심기를 거친 걸음걸이로 발산하며 걸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 때문에 하이힐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대통령 수석경호원 가희는 걸어오는 여인을 향해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걸어오는 여인의 얼굴이 가면이란 것도 알고 있었고 그녀가 국가정보국 국장이라는 것도, 그녀의 진짜 얼굴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대통령보다 나이가 6살 더 많았지만 걸어오는 모습은 20대 초반의 여자로 보였다. 하이힐을 신고 있었지만 단화를 신고 있는 가희보다 키가 작았다. 가희의 키는 177센티미터로 단화를 신고 있어도 늘씬함이 느껴졌고 운동과 무술로 단련된 몸매는 탄탄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리즈가 다가오자 가희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리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희를 쳐다봤다. 그녀에 대한 데이터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한가희. 28세. 177센티미터의 키에 59킬로그램의 몸무게. 양쪽 시력 1.2, 검도 4단, 태권도 3단, 합기도 2단에 유도 2단, 도합 11단의 무술 실력에 머리도 뛰어나서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일어와 중국어까지 능숙한 재원 중의 재원이었다. 마담 리즈에게 준이 있다면 대통령에겐 한가희가 있었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고 예뻐하는 경호원이었고 항상 데리고 다니는 아이였다. 지금도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옷 속에는 최신 기술이 집약된 최고 성능의 파워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훨씬 더 건장해 보였다.
  훗, 무기는 몇 가지나 가지고 있을까?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과거 가희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은근히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괘씸한 년.
  빤히 쳐다보는 리즈의 시선에 가희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가희는 서둘러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리즈가 시선을 떼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리즈는 자신의 목 뒤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이 스르르 모습을 바꾸었다. 음울한 눈동자와 매부리코, 얇고 가는 입술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어딘가 음침하고 사이한 느낌을 주는 중년 여인의 모습이었다. 마담 리즈의 본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여서 피부결은 20대 여인의 그것처럼 아주 고와보였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리즈는 대통령이 한가희를 총애하는 건 그녀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대통령은 독신이었다. 많은 노처녀들이 조카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처럼 대통령 장수진도 가희를 딸처럼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여자의 DNA 속에 새겨져 있는 모성본능이 독신이라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가희는 집무실 문을 닫고 텅 빈 복도로 시선을 고정했다. 가희의 귀 안에는 무선 인이어InEar가 꽂혀 있어서 대통령이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또 집무실 안에는 대통령의 바이탈사인Vital sign을 체크하는 센서가 있어서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국 국장을 만나는데 불미스런 일이 생길 경우는 남자가 애를 낳는 것만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담 리즈는 장수진을 대통령으로 만든 주역 중의 주역이었다.

  “안녕하시죠? 각하께서는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봅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테이블 위의 꽃이 빛을 잃을 만큼 아름다우시네요.”
  마담 리즈는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대통령을 향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대통령 장수진은 더 말라보였다. 편안함을 강조하기 위해 눈가 주름 일부는 제거하지 않고 놓아둔 상태였다. 머리카락도 일부러 하얗게 빛나는 백발로 염색했다. 그럼에도 갸름하고 마른 편인 얼굴은 날카로운 느낌을 숨기지 못했다. 눈빛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려는 듯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리 국정홍보처에서 편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개선하려고 해도 애를 먹고 있었다. 지금 걸치고 있는 베이지 색상의 스웨터나 하얀색 블라우스도 국정홍보처에서 고른 것이 분명했다. 가장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매 끼니 제공해도 살이 찌지 않았고 아무리 애써도 부드러운 이미지는 만들기 어려웠다.
  “어서 와요.”
  대통령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리즈를 맞이했다. 책상에서 일어나 가운데 놓인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은 친근하게 리즈의 손을 잡아 자리로 이끌었다. 대통령이 소파의 상석에 앉자 마담 리즈가 그녀의 오른편에 앉았다.
  “번거롭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 또 큰 일이 터져서 말이에요.”
  “번거롭다니요. 오히려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제가 게을러서요.”
  “그렇게 겸양 차릴 필요 없어요. 편하게 얘기해요. 참, 뭐 마실래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참, 최근에 좋은 홍삼이 들어왔다더군요. 그거 한 잔 마셔볼래요?”
  리즈가 대답할 말을 찾으려는데 대통령은 벌써 인터폰을 누르고 있었다.
  “여기 홍삼차 두 잔 가져와요.”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자 리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요즘 건강은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뭐 이젠 나이가 있어서 다 그렇고 그렇잖아요? 젊을 때 같지는 않으니까요.”
  “맞아요. 아, 운동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속상하게 말이에요.”
  두 사람은 사소한 잡담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건 마치 ‘당신이 먼저 시작해봐’ 하면서 서로 빈둥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가희가 차를 가지고 들어와 대통령과 마담 리즈 앞에 놓고 문을 닫고 나갔다. 대통령이 차를 권했다.
  “향기가 좋네요.”
  리즈가 미소 지었다. 차로 입술을 축인 대통령이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테러 말입니다.”
  “예. 말씀하세요.”
  “범인은 찾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단서는요?”
  “EMP폭탄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폭발력이나 전기, 화학반응 같은 것을 전자기펄스로 변환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것 같습니다만 그런 기술은 보안도 철저한 물건이라 확인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마담 리즈가 곤란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비음이 섞인 목소리와 눈썹을 찡그리는 모습이 묘한 퇴폐미가 있었다. 중년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섹시함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 몸에 밴 듯했다.
  “배후는? 경찰과 검찰은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어요. 한심하게도.”
  “지금으로선 명확하지 않습니다. 외부세력을 의심하기엔 아직 너무 정보가 부족합니다. 남성권리연합에 침투해 있는 자들에게선 별다른 징후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쪽도 당황하고 있답니다.”
  “휴……! 큰일이군요. 애써 수소연료전지를 보급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수소연료전지가 폭발한 것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알아차릴 염려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알아요. 하지만 또 발생한다면 문제 아닙니까? 자칫 잘못하면 발전계획 자체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칠 겁니다. 안 그래도 막대한 비용 때문에 애를 먹고 있잖아요?”
  “예. 문제는 문제입니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실 이번엔 운이 좋았습니다. 연료전지에 남아있던 수소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다음에도 운이 좋을 것을 기대할 순 없겠지요. 큰 폭발이 일어난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집니다. 수소 발전계획을 연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곧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야당이 공격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아뇨. 이건 꼭 이루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에너지혁신을 일으킬 기회가 아닙니까? 이 일이 성공하면 우린 역사에 남을 일을 하게 돼요. 더 이상 기름을 사오기 위해 다른 나라에 굽실거릴 필요가 없고 애플보다도 더 유명한 세계적인 기업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특허를 세계가 사게 될 겁니다. 이건 우리나라에 거대한 유전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거대한 유전이 생기는 것과 같아요. 이건 포기할 수 없어요.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사업입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말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다만 수소 발생 박테리아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예측이 불가능하지요. 완전히 개발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릴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그래도 지금 와서 포기할 수는 없어요. 내 뜻은 확고해요. 리즈도 잘 알잖아요? 우리 함께 추진했잖아요? 지금 와서 그만 둔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마담 리즈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하지만 곤란하다는 표시.
  정부는 수소연료전지 발전계획을 새 시대를 여는 핵심 성장 사업으로 선정하고 단계적으로 연료전지를 각 가정에 보급하고 있었다. 환경오염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공기와 물의 질도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문제는 한국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었다. 한국이 아무리 깨끗한 환경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해마다 중국에서 오염된 공기와 오염된 황사, 오염된 쓰레기들이 밀려왔다. 하늘로, 바다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이다. 또 기후온난화는 기후의 변동폭을 크게 만들어 아주 극심한 기후 재앙이 발생했다. 한국에도 사막화가 진행되는 곳이 생겼으며 가뭄인 곳은 지독하게 비가 오지 않았고 반대로 비가 오는 곳은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여름은 지옥처럼 뜨거웠다. 뚜렷한 건기와 우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석유는 한계를 모르고 가격이 치솟았다. 드디어 태양광 발전과 근접할 만큼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석유정점(Peak oil)을 지났다는데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변화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무단 복제나 다른 곳으로의 복사를 금합니다.
저작권 등록 제 C-2012-027473 호


다음 회로 이동

이전회로 이동

첫 회로 이동




핑백

  • 비와이슬 : 에그EGG #13 2013-01-02 01:29:33 #

    ... 전기로 작동하며 두 바퀴 뿐임에도 자이로스코프가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무단 복제나 다른 곳으로의 복사를 금합니다. 저작권 등록 제 C-2012-027473 호 다음 회로 이동 이전회로 이동 첫 회로 이동 ... more

  • 비와이슬 : 에그EGG #15 2013-01-04 00:59:12 #

    ... 2012년 2월 한국에서 개발되었다. HNC라는 명칭은 임의로 지어낸 것이다. 무단 복제나 다른 곳으로의 복사를 금합니다. 저작권 등록 제 C-2012-027473 호 이전회로 이동 첫 회로 이동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