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13 by 비와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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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은 양 손에 다이 블레이드를 쥐고 짚단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연무장 바닥엔 잘린 짚단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천장에 달린 조명 빛을 받아 블레이드는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합성다이아몬드라고 해도 보석의 특성을 발산하며 마치 아름다운 홀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빛을 뿌렸다.
  오른손에 쥔 블레이드는 전방을 향해 비스듬히 수직으로 서 있었고 왼손에 쥔 블레이드는 허리 부근에서 수평으로 뉘어져 있었다. 공격과 수비. 수평과 수직이 조화를 이루며 전방을 향해 날카로움을 드러냈다. 카앙-! 블레이드가 울었다. 칼날이 회전을 시작할 때 나는 특유의 앙칼진 소음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다. 궤적은 짚단마다 세 차례씩 교차했지만 짚단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블레이드가 회전을 멈추자 다시 조용해졌다.
  준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고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딱 벌어진 어깨에 남성적인 매력이 풍기는 미남이었지만 냉정함이 엿보였다. 굳게 닫힌 얇은 입술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해주었다.
  연무장 문이 열리고 남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걸음이 바닥을 울리자 그제야 서있던 짚단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준을 향해 다가와 거수경례를 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4호가 죽었습니다.”
  순간 무표정하던 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얇은 입술이 움직이지 않은 듯 벌어지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한 짓이야?”
  “특수한 슈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군용 슈트보다도 강한 슈트였습니다. 어디서 제작한 건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
  “뭐?”
  “4호에게서 전송된 영상이 잡음이 많아서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범인은 좀비 같습니다.”
  “좀비라고?”
  “예.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최선을 다해 추적중입니다.”
  “여자는?”
  “놓쳤습니다.”
  카앙-! 순간 가만히 있던 준의 오른손이 번뜩였다! 보고하던 사내의 머리카락이 잘려 우수수 떨어졌다. 준의 오른손에 있던 블레이드가 엄청난 빠르기로 지나간 것이다. 사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찾아라!” 냉정한 음성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튀어나왔다.
  “수, 수색 중입니다.”
  “공격한 놈도 찾아라. 모든 자원을 사용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못 찾으면 넌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다.”
  “기필코 찾아내겠습니다!”
  파랗게 질린 사내가 경례를 하고 밖으로 향했다.
  준은 양손에 쥐고 있던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눌렀다. 블레이드의 칼날이 삼등분으로 줄더니 손잡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준은 칼날이 들어간 블레이드를 신고 있던 부츠에 끼웠다. 그리곤 성큼성큼 연무장 밖으로 향했다.
  준은 연무장 앞에 세워져 있는 세그웨이Segway(주6)에 올랐다. 세그웨이가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복도를 지나 건물을 나서자 넓은 정원이 나타났다. 준은 정원 가운데 놓여진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인공 연못이 있고 옆으로 수십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정원수들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세그웨이로 5분 정도 깊숙이 들어가자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준은 문 앞에 세그웨이를 세워놓고 안으로 향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장 차림의 경비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경례를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저택은 궁전 같았다. 메인 홀의 천정은 족히 7미터는 넘어 보였는데 가운데 화려하게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샹들리에의 크기가 5미터는 될 것 같았다. 홀의 벽면엔 야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태피스트리Tapestry로 장식되어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준은 익숙한 듯 거침없이 가운데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좌우로 문들이 여러 개 있었고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문이 있었다. 준이 다가가자 경비원들이 경례를 했다.
  “왔다고 알려라.”
  준이 말하자 경비원 한 명이 손목에 찬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원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준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마담 리즈는 거의 벗은 모습으로 침대에 눕다시피 기대어 있었다. 그녀의 다리 쪽에 아직 풋내가 나는 청년이 벗은 몸으로 마담 리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외설스런 풍경에도 준은 얼굴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
  먼저 입을 연 건 마담 리즈였다.
  “어떻게 됐어?”
  처음으로 준이 청년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느끼자 리즈가 명령했다.
  “잠깐 나가 있어.”
  다리를 주무르던 청년이 밖으로 나가자 준이 입을 열었다.
  “놓쳤습니다.”
  준의 말에 리즈가 못마땅한 듯 찡그리며 혀를 찼다. 준이 덧붙였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공격한 자가 있습니다. 단순한 도둑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비밀무기라고만 알아 둬. 다른 사람 손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
  “파괴해도 됩니까?”
  “안 돼! 남의 손에 들어가는 건 더욱 안 돼! 명심해라. 정 다른 방법이 없다면 파괴해. 하지만 너도 벌을 받을 거야.”
  리즈는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돌아서 나가려 하자 리즈가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방을 나선 준이 손짓하자 밖에 서 있던 청년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준의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저놈이 며칠 만에 불구가 될지 내기를 하고 싶었다.


  비톨VTOL은 짐을 내려놓듯 괴한을 떨어뜨렸다. 이미 그런 취급에 익숙한 듯 괴한은 키득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에 격납고 같은 건물이 있었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움직일 때마다 소음이 심하게 났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조명이 켜졌다. 눈이 부신지 잠깐 멈칫했다. 넓은 공간 안쪽에 수술대 같은 금속테이블이 있었고 한쪽 옆으로 선반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위에 각종 부품들과 기계, 공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반대쪽에는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벽면과 천정에 부착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 복잡하게 생긴 기계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수술대를 향해 다가갔다. 앞에 오자 왼손으로 헬멧을 벗으려 애를 썼다. 오른손을 쓸 수 없으니 헬멧 벗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욕을 하며 한동안 낑낑거리던 그가 헬멧을 벗었다. 흉측한 몰골이 드러났다. 누구나 한번만 보면 잊지 못할 얼굴이었다. 한쪽 눈은 유리 같은 의안이었고 심한 화상을 입었는지 코가 뭉개져 있었다. 뻐끔한 두 구멍만이 거기가 코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나마 정상적인 곳은 입뿐이었다. 일그러지고 불탄 얼굴. 오직 한 개의 벌겋게 충혈된 눈만이 강렬한 적의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었다.
  “슈트 개방!”
  그가 명령하자 슈트가 열렸다. 놀랍게도 그의 복부 부분은 인간이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내장이 있어야 할 부분이 기계와 복잡한 전선, 액체가 흐르는 파이프들로 채워져 있었다. 기계장치들 위로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폐의 아래 일부분이 보였고 뒤쪽으로 다소 어두운 빛이 도는 신장 하나가 보였다. 반대쪽 신장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동그란 통 같은 기계가 파이프에 연결된 채 고정되어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기계로 채워진 부분은 투명한 아크릴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피가 흐르고 사람의 피부와 살이 있는 정상적인 부분은 심장이 있는 위쪽뿐이었다. 그마저도 가슴 부위에는 금속으로 된 카테터Catheter가 고정되어 있었다.
  개방된 슈트를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졌다. 하지만 한쪽 다리와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부분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고장으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제길!”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한쪽에 놓인 공구대 위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드라이버를 집어서 드릴에 끼웠다. 드릴을 쥐고 다리에 대고 눌렀다. 드르륵 하는 소음과 함께 슈트의 커버가 벗겨졌다. 하체가 없었다! 차갑게 빛나는 금속 뼈대 위에 유압 파이프와 모터, 기계장치가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심장 아래 하복부부터 아래 전부가 기계였다.
  고장난 오른팔 부분을 벗기자 팔 한쪽에 작은 기계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기계는 표면에 디스플레이가 붙어 있었고 마치 팔에 삽입이라도 된 것처럼 피부 속에 박혀 있었다. 디스플레이에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숫자를 보더니 한쪽의 선반으로 다가갔다. 선반 위에는 수액 링거가 가득 있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수액 링거 하나를 집어 들고 가슴에 꽂혀있는 카테터에 끼웠다. 링거를 스탠드에 걸었다. 다시 노란색 링거를 같이 끼웠다. 링거 두 개가 걸린 스탠드를 끌고 수술대로 다가가더니 벌렁 누웠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오른팔에 부착된 디스플레이를 힐끔 보았다. 숫자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보스 연결해.”
  명령하자 벽면에 있는 디스플레이가 켜졌다. 곧 인공적인 영상이 나타났다. 한 여자의 얼굴이었는데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컴퓨터가 합성해놓은 그래픽 같았다. 영상이 나타나자 입을 열었다.
  “실패했습니다. 여자는 도망쳤습니다.”
  [난자는?]
  “그것도 여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한심한 놈. 포기하지 말고 찾아라. 네가 살아있는 이유다.]
  음성은 냉혹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몸이 움찔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용서하십시오. 꼭 찾아오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수리를 해야합니다. 방해자가 있었습니다.”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알려주겠다. 준비하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영상이 꺼졌다.
  “닥터 연결해.”
  컴퓨터가 명령에 반응하고 잠시 후 수술대 천정에 있는 디스플레이가 켜졌다. 화면에 여자 한 명이 나타났다. 파란색 수술복과 수술용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노이즈. 하이~! 뭐가 필요해?]
  “너!”
  여자의 물음에 누워있던 괴한은 강한 적의를 품고 대답했다. 여자는 까르르 웃었다. 괴한의 이름이 ‘노이즈’인 모양이었다. 이름처럼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음이 신경을 건드렸다.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네.]
  “널 수술할 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나처럼 말이지. 흐흐흐.”
  [헛된 꿈은 버리는 게 좋아. 생명의 은인에겐 ‘더욱’ 그래선 안 돼! 알겠어?!]
  “크크크크크!” 노이즈는 광소를 터트렸다.
  수술대 한쪽에 서 있던 커다란 기계가 수술대로 다가왔다. 화면에 나타난 여자가 원격조종하는 모양이었다.   기계에서 사각형 판넬이 하나 펼쳐지더니 괴한의 몸 위로 위치를 잡았다. 사각형 판넬이 머리부터 다리까지 이동하며 스캔하기 시작했다.
  “다리는 부품을 갈면 되고. 하나 남은 신장이 영 상태가 안 좋은데. 어떻게 할래? 갈래? 기계로 갈아줄까? 돼지 신장으로 갈아줄까?”
  “맘대로 해. 약이나 놔 줘.”
  “수술 끝나고 놔줄게.”
  여자의 말에 노이즈는 상스러운 욕을 퍼부었다. 그가 말했다.
  “약이나 놔! 안 그러면 다 엎어버릴 테니까!”
  여자는 익숙한지 노이즈의 격렬한 반응에도 태연했다.
  “약에 취해서 수술 받으면 위험한데…….”
  “아무래도 좋아. 약이나 놔. 그리고 맘대로 해.”
  “약에 너무 빠져 있는 거 아냐?”
  “개소리 하고 있네. 내가 섹스를 할까? 술을 마실까? 음식을 먹을까? 내가 약 때문에 살아있다는 거 알면서 놀리는 거야, 뭐야? 이 개 같은 년아-!”
  “이제 그만 열 낼 때도 되지 않았나? 지겹네. 미친 놈! 알았어. 놔 줄게.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여자의 말에 노이즈가 크큭거리면서 웃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여자가 원격조종을 하는 모양이었다. 수술대 옆에 와 있던 기계가 선반에 있는 시가Cigar만한 금속 병을 두 개 집어 몸체에 끼웠다. 잠시 후 금속 병 표면에 파란 LED가 켜지더니 속에 있는 액체가 흘러나와 기계에 있는 투명한 병에 섞였다. 강렬한 붉은 빛이 도는 액체가 만들어졌다. 그걸 보는 노이즈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기계가 그의 팔에 액체를 주사했다.
  노이즈의 험악한 표정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강력한 마약의 쾌감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몽롱해지는 의식과 함께 하나뿐인 눈이 스르르 감겼다. 눈 가로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내가 …… 인간인가? …… 내가 무슨 꿈을 …… 알아? 난 머리만 남아 있더군. …… 꿈에서 …… 머리만 남아 있어. …… 머리만 …….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 모를 거야. …….”
  노이즈가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노이즈가 의식을 잃자 고글 속에서 차갑게 빛나는 여자의 눈은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곧 기계가 그의 복부를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주6) 세그웨이Segway : 두 바퀴 사이에 발판이 있고 발판 가운데에 기둥처럼 핸들이 고정되어 있는 형태의 탈 것. 전기로 작동하며 두 바퀴 뿐임에도 자이로스코프가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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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등록 제 C-2012-027473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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