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12 by 비와이슬


  탕-! 권총에서 거무칙칙한 것이 튀어나갔다. 괴한의 몸에 맞았지만 괴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무충격탄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괴한이 가소로운 듯 키득거렸다. 사내는 예상했다는 듯 대형권총의 세팅을 바꾸었다.
  퍽-! 권총에서 뾰족한 바늘이 튀어나가 괴한의 몸에 꽂혔다. 바늘에는 긴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자 선에 전기가 흘렀지만 괴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테이저건Taser gun(주4) 같은 건 소용없어.”
  탕탕탕-! 총성과 함께 금속음이 피아노선을 두드리듯 울려퍼졌다. 실탄도 소용이 없었다. 괴한의 몸에 부딪친 총탄은 사방으로 튀며 금속성 소음을 발산했다.
  “역시.” 처음으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내는 권총을 바닥에 버렸다. 괴한이 물었다.
  “다 했나?”
  “아니.”
  사내는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본부. 불법 파워슈트 착용자와 대치 중이다. 블레이드 사용허가를 바란다.”
  [허가한다.]
  그때였다. 잠자코 있던 괴한이 사내를 덮쳤다. 사내가 덮쳐오는 괴한을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괴한은 왼손으로 막으며 그대로 사내를 내리눌렀다. 두 사람이 뒤엉켜 주먹을 교환했다. 고함과 욕설, 분노에 찬 괴성이 터졌다.
  “넌 누구냐? 누군데 파워슈트를 입고 있는 거야?”
  그때 사내가 입고 있던 코트가 찢어졌다. 사내의 옷 속에 검은색의 파워슈트가 드러났다. 슈트의 가슴과 등에 ‘STF’란 이니셜이 보였다. 두 사람의 격투로 레이의 집이 폐허가 되고 있었다.
  사내가 고함쳤다.
  “넌 누구냐? 남자는 파워슈트를 착용할 수 없다!”
  “미안하게도 성별 따윈 몰라. 후후!”
  “네가 입은 건 군용인가?”
  “애송이. 이건 슈트가 아니다. 내 몸이지. 장난 그만 치고 보여주지!”
  순간 괴한이 울부짖듯 괴성을 질렀다. 괴한이 사내의 왼팔을 꺾었다.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내가 입고 있는 슈트의 팔이 부서지며 너덜거렸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사내가 쓰러지자 괴한이 그를 걷어찼다. 사내가 지푸라기처럼 벽에 부딪쳤다. 괴한은 기분이 좋은지 흥분한 목소리로 쓰러진 자를 계속 조롱했다.
  팔이 처참하게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사내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왼팔이 축 늘어져 있었다. 사내의 오른손에 약 1미터 정도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검의 날 부분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후후. 다이 블레이드. 그걸 들면 나아질 것 같아?”
  다이 블레이드. 정확한 명칭은 다이아몬드 블레이드 검劍이었지만 줄여서 다이 블레이드라고 불렀다. 다이아몬드의 다이를 ‘die’란 의미로 바꾼 별명이었는데 합성다이아몬드를 사용해서 제작한 검이었다. 파워슈트가 발달하자 기본적으로 웬만한 총탄은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방탄성능이 워낙 뛰어났고 거기에 보통의 금속으로 제작된 도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개발된 검으로 파워슈트의 방탄·방검 성능을 파괴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상 최고 수준의 경도를 갖추고 있는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를 날 부분에 접합해서 엄청난 강도와 날카로움을 지니게 만든 무기였다. 정확하게는 전기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톱날처럼 삐죽삐죽하게 제작된 두 개의 칼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하며 회전했다. 가위처럼 교차하며 잘라내는 무기였다. 1분에 2천4백여 회라는 엄청난 속도로 교차하는 두 개의 다이아몬드 톱날이 닿는 모든 것을 자르고 갈아냈다. 대부분의 금속도 종이처럼 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공격당하면 불구가 되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허가가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했는데 허가가 떨어지는 순간 위험을 알아챈 괴한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팔이 부러진 사내는 고통 때문인지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문 채 괴한을 향해 블레이드를 겨누었다.
  “STF, Special Task Force(주5)의 약자지. 어디 소속이지?” 괴한이 물었다.
  사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통증을 이기려 애썼다. 모든 정신을 괴한에게 집중했다. 팔이 부러진 이상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을 처치해야 했다. 실패는 죽음이었다.
  소리가 났다. 정적을 깨며 레이가 정신을 차리고 버둥거렸다. 충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씩 또렷해지자 주위를 살폈다. 괴한과 어떤 사내가 대치하고 있었다.
  괴한과 사내는 레이가 깨어난 걸 알았지만 주의를 돌릴 수가 없었다. 순간 기합소리와 괴성이 터졌다. 두 사람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격돌했다. 앙칼진 소리와 함께 번뜩이는 블레이드가 공간을 갈랐다.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우드득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오른팔에서 블레이드가 떨어져 바닥에 꽂혔다. 괴한이 사내의 오른팔도 부러뜨린 모양이었다. 고통에 덜덜 떨며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괴한의 하복부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다이아몬드 블레이드 검이 하복부을 가리고 있던 파워슈트 일부를 잘라낸 것이었다. 하지만 파워슈트가 떨어져 나간 곳에는 끔찍한 광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괴한의 뱃속에는 기계와 전선, 징그럽게 생긴 고무 같은 파이프가 얼기설기 엉켜 있었다. 파이프에는 부동액 같은 칙칙한 녹색의 액체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끔찍한 모습에 사내가 떨며 물었다.
  “누가 이런 짓을?”
  “이런 건 첨 보는 모양이지? 너도 이렇게 만들어주지!”
  괴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엔 분노가 묻어 있었다. 그건 마치 보이기 싫은 치부를 보인 자의 분노 같았다. 다음 순간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괴한이 사내의 오른팔을 그대로 뜯어 버렸다. 뿌려지는 피! 엄청난 충격에 사내가 기절했다. 하지만 괴한은 분노에 찬 괴성을 터트리며 사내를 인형을 파괴하듯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파워슈트가 박살이 나 너덜거렸다. 사내의 몸이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해졌다. 그럼에도 괴한은 사내를 부수고 또 부수었다. 이미 생명이 끊어졌음에도 잔혹하게 시체를 유린하고 있었다. 그는 미친 것 같았다.
  레이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았다. 괴한이 돌아볼까 두려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망쳐야 했다. 시체를 훼손하고 있는 미친 괴물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도주하려면 그를 지나쳐야 했다. 사방에 튀어있는, 검고 칙칙한 액체와 피냄새인지 오물냄새인지 모를 역겨운 냄새가 레이를 더욱 두렵게 했다. 어떻게 해야 악마를 지나쳐 도망칠 수 있을까? 레이는 도움이 될 게 없을까 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부서진 책상, 깨진 거울, 박살이 난 컵, … 레이의 눈에 부서진 벽 사이에 뭔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죽은 사내와 괴한이 싸우다가 생긴 틈 사이에 전선이 끊어져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서 난 힘인지. 그저 살아야한다는 본능뿐이었다. 레이는 벌떡 일어나 흔들리는 전선을 잡았다. 피복이 벗겨져 구리가 빛에 번쩍였다.
  괴한이 레이의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레이는 돌아서는 괴한의 하복부를 향해 벗겨진 전선을 찔렀다!
  무서운 비명! 스파크가 튀며 괴한이 감전되어 비명을 질렀다. 전혀 전기가 통하지 않는 파워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죽은 사내가 다이아몬드 블레이드로 잘라낸 하복부는 무방비였다. 레이가 갖다 댄 전선에서 흘러들어간 전기가 괴한의 온 몸을 관통했다. 파워슈트에서 연기가 났다. 타는 냄새와 함께 괴한의 몸에서 레이의 난자캔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걸 보자마자 레이는 그대로 집어 들고 문을 향해 달렸다. 죽을힘을 다해 그저 부서진 문을 향해 뛰었다.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모든 사고를 지배했다.
  레이가 도망치는 바람에 몸에서 전선이 떨어지자 괴한은 뻣뻣하게 굳은 채 쿵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충격에 집이 흔들렸다.
  레이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눈에선 눈물이 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었다. 더 달릴 힘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이미 죽었다고 해도 사람의 몸을 훼손하는 장면을 본 터라 레이는 덜덜 떨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충격이 아니었다. 그 자는 악마 같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겨우 조금 진정이 되자 손에 쥔 난자캔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봉인은 파괴되지 않았다. 곁에 조금 흠집이 생기긴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 악마 같은 자의 파워슈트에는 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파워슈트 덕분에 살아남은 것 같았다. 온 몸이 쑤셨다. 파워슈트로 인해 외상은 입지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온 몸이 아팠다. 파워슈트가 충격을 다 막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온 몸에 멍이 가득할 것 같았다.
  레이는 고통과 두려움, 충격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찾았다. 찌릿한 통증이 밀려와 보니 손톱이 부러져 있었다. 아픔을 참으며 스마트폰을 찾았다. 아노미아와 연락해야 했다. 당장 어디로 갈지 막막했던 것이다.

  레이가 도망치고 5분쯤 지났을 때, 쓰러져 있던 괴한의 몸이 꿈틀거렸다. 감전되어 회로가 다 타버렸을 것 같은데도 그가 입은 파워슈트는 자동으로 리부팅하며 기능을 회복하고 있었다. 괴한이 일어서려고 바닥을 짚으려 했지만 오른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장난 모양이었다. 욕을 하면서 괴한은 왼손 하나만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바닥에 고여 있던 피 때문에 왼손이 미끄러져 다시 처박혔다. 그의 온몸도 온통 피로 엉망이었다.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가까스로 일어선 괴한은 걸음도 시원치 않았다. 다리도 정상이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음이 심하게 났다. 절뚝거리면서 집 밖으로 나간 그는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냈다. 신호탄이었다. 펑하는 폭음과 함께 이글거리는 밝은 빛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는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지는 빛을 보며 히죽 웃었다. 왼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서 있었다.
  “제길! 퉤-!”
  잠시 후 반짝거리는 불빛이 괴한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비톨VTOL이었다. 괴한의 머리 위에 멈춘 비톨에서 올가미 같은 로프가 쏘아지더니 괴한의 왼팔을 낚아챘다. 보기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괴한의 몸이 왼팔 하나에 묶여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통스러울 법도 하건만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저주와 욕설만 퍼부을 뿐이었다.


주4) 테이저 건(Taser gun)은 근육의 자율적인 통제를 붕괴시키는 전류를 발생시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무기. 전기충격기의 일종이다.
주5) Special Task Force 기동대, 특수임무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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