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10 by 비와이슬


3 좀비 Zombie



  [정전으로 인해 인명피해까지 발생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중이던 환자 세 명이 의료기기가 파괴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청소년 두 명이 레알월드 Real World에서 활동하던 자신의 캐릭터가 증발한 것에 상심한 나머지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경제적인 피해는 더욱 심각합니다. 정보통신부에서 계산한 피해액은 자그마치 3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테러를 저지른 자들을 반드시 체포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경찰은 폭탄 파편에 관해서는 일체의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폭탄이 아니라 전자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전자포의 형태라면 현재 경찰이 도주차량을 멈추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자포보다 적어도 천 배의 출력이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 ]

  이틀 동안 뉴스는 EMP테러에 대한 보도뿐이었다.
  레이는 뉴스를 틀어놓은 채 집안을 정리했다. 한쪽 벽 전체를 채우고 있는 화보, 패션, 일러스트 관련 자료가 담긴 메모리들을 박스에 담았다. 난자 경매로 돈이 생길 테니 포장이사를 신청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아끼며 살았던 터라 직접 짐을 꾸렸다. 혼자 사는 조그만 집이라 그다지 많지도 않았다. 옷도 별로 없었고 가구도 침대와 책상 둘 뿐이었다. 깨지기 쉬운 화장품 병들을 따로 담고 소소한 것들을 챙겼다. 집은 작은데도 어디서 물건들이 튀어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잡다한 물품들이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화분을 식물이 다치지 않게 비닐로 감싸고 하나씩 따로 담았다.
  대략 짐 싸기가 끝나자 피곤해서 하품이 났다. 거울을 보자 다크서클이 생긴 것 같았다. 레이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미모를 가꾸는데 투자를 해야 할까? 아직 성형스캐너에 체크되지 않는 자연인이었다. 성형을 한 적이 없으니까 당연했지만 자연인으로서 아주 빼어난 미인이 아니라면 별 의미는 없었다. 그저 성형을 안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그걸 강조할 뿐이었다. 솔직히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고 또 수술 자체가 끔찍하게 무서웠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난자를 판 대금이 들어온다.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시계를 보았다. 밤 8시를 지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틀었다. 벽지를 바다풍경으로 바꾸었다. 인공적으로 펼쳐지는 바다 모습. 아주 크게 인화해놓은 사진 같다. 조명을 햇빛모드로 바꾸었다. 실제 태양광보단 약하지만 노란 기운이 추가된 빛은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었다.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송여지 님 집이 맞습니까? 화물 배달왔습니다.”
  문을 열었다. 작업복 차림의 배달원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 옆에 2미터 정도 되는 큰 박스가 수레에 실려 있었다. 박스는 알루미늄 느낌으로 반짝거렸다.
  “뭐에요?”
  “송여지 님이십니까?”
  “네. 전데요.”
  “슈트 배달왔습니다.”
  레이는 그제야 알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 외로 빨리 배송되었다. 배달원은 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해가 갔다. 레이가 사는 곳은 가난한 동네였다. 아주 한적하고 뜸하고 황량한. 이렇게 비싼 파워슈트 같은 걸 살만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배달원이 지문감식기를 내밀었다. 레이는 엄지를 기계에 갖다댔다. 곧 레이의 신상정보가 떠올랐다.
  “확인 감사합니다.”
  배달원은 슈트가 담긴 박스 옆에 붙은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먼저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파워슈트는 모든 충격에서 착용자를 보호하지는 못합니다. 슈트의 내구한도를 넘는 과도한 충격은 고스란히 착용자에게 전달되어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슈트의 제한속도와 기능을 높이려고 오버클럭킹overclocking을 시도한 제품은 A/S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 경우 착용자의 근육과 관절, 뼈에 치명적인 무리를 줘서 부상을 입을 수 있으며 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번 ‘각인’된 슈트는 타인에게 제공할 수 없으며 타인에게 판매할 경우엔 반드시 저희 회사에 미리 알려주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금을 정해진 기한 내에 지불하지 못할 경우 즉시 사용이 금지되며 불법사용으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계약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셨습니까?”
  “네. 이해했어요.”
  “계약서에 사인해주시겠습니까?”
  레이가 서류에 사인을 하자 배달원이 계약서 사본 한 장을 떼서 건넸다.
  “저희 제품을 구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각인’을 시작하겠습니다.”
  배달원이 동그랗게 생긴 금속을 꺼냈다. 아주 가늘고 견고해보이면서도 빛이 나는 팔찌 같았다.
  “왼팔과 오른팔, 어느 쪽에 착용하시겠습니까?”
  레이는 왼팔을 내밀었다.
  “이 키Key가 벗겨지지 않는다는 건 아시지요?”
  “알아요.”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Key를 벗고자 하실 경우엔 저희 회사로 연락해주시면 직원이 달려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파워슈트는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큰 만큼 본인 이외는 사용 할 수 없고 조종할 수 있는 키Key는 항상 차고 있게 됩니다. 그럼, ‘각인’을 시작하겠습니다.”
  배달원이 팔찌 같은 키를 레이의 왼손목에 채웠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는 팔찌가 저절로 수축되더니 레이의 손목에 맞게 사이즈가 줄어들었다. 아주 가늘고 가는 시계를 찬 것 같았다.
  “앗!”
  레이가 놀라 외쳤다. 팔찌에서 잠깐 따끔하는 감각이 느껴졌던 것이다.
  “놀라셨습니까? 고객님의 DNA정보가 입력되는 과정입니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십시오. 좀더 느슨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그럼, 키Key에 대고 말을 해보시겠습니까? 아무 말이나 상관없습니다. 음성패턴을 인식하기 위함이니까요.”
  레이가 키에 대고 말을 하자 키에서 녹색 불빛이 깜빡였다.
  “네. 다 됐습니다.”
  배달원은 미소를 지으며 박스를 집안으로 밀었다. 레이가 한쪽으로 비키며 길을 열어 주었다.
  배달원은 레이의 집 안에서 박스를 풀었다. 알루미늄으로 반짝이던 박스가 개봉되자 안에는 흠집방지를 위한 스티로폼이 보였다. 배달원이 스티로폼을 떼어냈다.
  파워슈트 FDW-10C. 은색과 강렬한 레드가 섞여 있는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양은 중세의 갑옷 같았지만 방탄조끼에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계가 결합되어 있었다. 착용자의 근육이 루게릭병 환자처럼 힘이 없다 해도 1톤 트럭과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파워슈트가 개발되고 상용화된 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게 집앞 동산을 오르는 것처럼 쉬워져 레저의 하나로 유행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병목현상이 심한 곳 중 하나였다.
  배달원이 파워슈트를 개방했다. 마치 인체 모양을 그대로 본 딴 관棺이 열리는 것 같았다.
  “입어보시겠습니까?”
  배달원이 권했다. 레이가 슈트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배달원이 덧붙였다.
  “착용감을 위해 반바지와 얇은 티셔츠 같이 간편한 옷을 권장합니다.”
  레이는 말없이 슈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픈된 슈트의 가슴부분과 팔, 다리 부분이 레이의 신체를 인식하자 녹색의 작은 LED가 켜졌다.
  “‘슈트 잠금’이라고 말하시면 됩니다.” 배달원이 알려주었다.
  “슈트 잠금.”
  개방된 슈트가 특유의 기계음을 내며 닫혔다. 목 위 부분은 없었기 때문에 답답하거나 두려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편안하십니까?”
  “다리 쪽이 조금 헐거운 것 같은데요? 플라스틱 냄새 같은 게 나네요. 쇠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냄새는 조금 있으면 사라질 겁니다. 제가 맞게 조정해드리겠습니다.”
  배달원이 레이의 슈트를 미세조정했다. 조정이 끝나자 말했다.
  “움직여보십시오.”
  “어떻게요?”
  “그냥 움직이시면 됩니다.”
  레이는 심호흡을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다리를 움직였다.
  “오……. 오, 오우! 이야-!”
  자기도 모르게 레이는 탄성을 지르며 웃었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2배는 되는 슈트가 레이의 관절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움직인 것이다. 팔을 움직였다. 팔도 다리도 완벽하게 반응했다. 그건 마치 잘 만들어진 로봇을 조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봇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슈트는 레이의 움직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속도를 높였다. 뛰다시피 하자 집이 흔들렸다. 대략 몸무게 포함 130킬로그램이 큰 힘으로 움직이니 발을 디딜 때마다 쿵쿵거리며 집이 흔들렸고 선반에 놓인 물건들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떨었다.
  “반응속도는 세 단계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출고 기본상태는 가장 저속에 맞춰져 있습니다. 작동에 익숙해지시면 속도를 높여보시기 바랍니다. 그전까지는 저속모드를 권장합니다.”
  레이는 배달원의 설명에도 아랑곳 않고 좁은 집안을 돌아다녔다. 싱크대에서 물건을 집어보고 앉아보고 엎드려보고 뛰어보았다. 대단한 발명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레이를 흥분케 했고 감탄하게 했다. 그건 어릴 때 최고로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손에 넣었을 때와 같은 흥분이었다.
  “역시 돈값하네요!”
  레이의 말에 배달원이 웃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습니다. 보험 가입하실 거죠?”
  “무슨 보험요?”
  “파워슈트를 착용하다가 부상하는 경우에 대비한 의료보험과 도난, 파괴되는 경우에 대비한 물적 보상 보험입니다. 대부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들 가입하십니다. 단 ‘탈옥’하는 경우에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익숙해지다 보면 다들 파워슈트의 성능을 높여보고 싶어 하거든요. 그러다 부상을 많이 당하게 되죠.”
  탈옥. 기계나 장비에 기본적으로 걸려있는 제한을 임의로 풀어서 개조한 것을 말했다. 배달원은 철저히 교육을 받았는지 ‘탈옥’을 이야기할 때는 아주 깊은 혐오감과 경멸을 얼굴에 드러냈다.
  “보험료는요?”
  “음, 대략 1년에 2천만 원정도 나오겠습니다.”
  보험료 액수를 듣자 지금껏 즐겁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너무 비쌌다. 보험료는 사라지는 돈인데 액수가 너무 컸다. 2천만 원이면 아껴서 살 경우 1년은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다. 고민하던 레이가 말했다.
  “전, 됐어요. 파워슈트에 자체 내장 GPS는 있죠? 각인 안 된 사람은 조종 못한다고 들었는데, 키Key가 있어도 말이에요.”
  “네? 정말 안 드시겠습니까? 부상당하는 경우 치료비가 아주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고요. 물론 GPS와 도난방지를 위한 기술은 잘 적용되어 있습니다만…….”
  배달원은 잘못된 선택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뜸을 들였다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나 법을 어기는 자들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생각 좀 해볼게요. 나중에라도 가입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레이는 배달원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흘리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모습. 기계인간 같았다. 레이의 뺨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럼 다른 궁금하신 점이 있습니까?”
  “아뇨.”
  시선도 돌리지 않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파워슈트 위에 옷을 걸치면 조금 통통한 여자정도로 보일 것 같았다. 그리 나쁜 모양이 되지 않을 건 확실했다. 맘에 들었다. 아주 흡족했다.
  “박스는 가져갈까요? 놔둘까요?”
  “가져가세요.”
  “네. 그럼,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문제가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배달원이 박스와 포장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배달원이 사라지자 레이는 고함을 질렀다.
  “앗싸-! 윽!”
  그와 동시에 쿵하는 충돌음과 아픈 비명이 뒤를 이었다. 신이 나서 점프했다가 그만 집 천정에 머리를 받은 것이다. 아픈 머리를 주무르면서도 레이는 바보처럼 히죽거렸다. 이제 남자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총도 칼도 소용없었다. 정말 너무너무 맘에 드는 장난감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난자를 판 일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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