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9 by 비와이슬


  사람들의 비명과 분노에 찬 고함소리, 외침, 절규가 난무했다. 그 사이를 아노미아와 레이가 뛰었다. 숨이 차 멈추었다. 시위현장을 돌아보았다.
  “저거 뭐야?”
  충격탄을 맞고 쓰러져 있는 자들에게 그물 같은 것이 쏘아졌다. 격자형 무늬의 작은 그물은 쓰러진 사람에게 마치 랩이 씌워지듯이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살아있는 생물이 먹이를 삼키듯 전신을 감쌌다. 마치 뱀의 입속에 삼켜지는 것 같았다. 순간, 그물이 씌워진 사람이 소멸되듯 사라져 버렸다. 그물도, 사람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텅 빈 공간만 있었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아까 레이를 ‘밟고’ 지나갔던 ‘탈옥’한 마녀도 그물에 휩싸여 사라졌다.
  “경찰이 실제 접속한 위치를 알아내고 접속을 차단한 거예요. 강제차단. 곧 경찰에 체포될 거예요.”
  “집으로 들이닥친단 말이야?”
  레이의 물음에 아노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노미아가 물었다.
  “우리 그만 할래요?”
  “위험해?”
  “아직까진 괜찮아요. 내 실력 알잖아요?!”
  “그럼, 지휘부 있는 대로 가보자.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레이의 말에 아노미아가 방향을 바꿨다. 두 사람은 도주하는 대신 지휘부를 향해 달렸다.
  멀리 바리케이드가 불타는 게 보였다. 지휘부가 장갑차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해둔 바리케이드였지만 온통 검은 연기를 내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휘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남성권리연합.
  “캡틴을 볼 수 있을까?”
  레이의 말에 아노미아가 쳐다봤다. ‘캡틴’. 남성권리연합을 이끄는 자를 말한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노미아도 몰랐다. 레이가 덧붙였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아?”
  “캡틴을 왜 그렇게 보려고 해요?”
  “음, 사실은 연애해보고 싶어서!”
  “컥-! 아, 좀 그만 해요-!”
  아노미아가 뛰다가 넘어졌다. 레이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다리가 꼬인 것이다. 아노미아가 일어나 소리쳤다.
  “안 어울리게!”
  “왜?! 안 될 건 뭐야? 음, …… 내가 캡틴이랑 결혼이라도 한다면 난 남련 모든 남자들의 ‘왕’이 되는 거잖아?! 짜릿하지 않아?! 생각만 해도 짜릿한데! 그렇잖아?! 남련 남자들이 십만 명 쯤 되나? 십만 명이 다 내 부하가 되는 고다-!”
  레이가 눈을 빛내며 신이 나서 말하자 아노미아는 자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언니-! 제발~~~~~!”
  그때였다. Real World의 일부분이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팟! 팟! 팟! 누군가가 순차적으로 스위치를 내리듯 암흑이 단계적으로,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찾아왔다. 완벽한 암흑!

  “뭐야-?”

  [접속이 끊어졌습니다.]

  VR에서 깨어났다는 걸 깨달은 레이는 던지듯 머리에 쓰고 있던 접속기를 벗었다.
  “아노미아. 연결해!”
  레이가 컴퓨터에게 명령하자 곧 아노미아와 통신이 연결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레이의 물음에 아노미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EMP가 터졌대요!]
  “뭐?”
  [EMP요! 등대 서버가 있는 곳 반경 500미터가 다 파괴됐어요. 전부 다요.]
  “‘남련’ 짓이야?”
  [미쳤어요! EMP는 테러라구요! 우린 절대 아니에요! 절대!]
  아노미아가 펄쩍 뛰었다. 반경 500미터면 복구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경 500미터 안 모든 전자장비와 모든 컴퓨터, 모든 시설이 파괴되었다는 뜻이었다.
  한참 만에 레이가 입을 열었다.
  “숨어야겠어. 분위기가 안 좋아. 경매가 끝나는 대로 떠날 거야. 안전해지면 내가 연락할게.”
  [알았어요. 몸조심해요.] 아노미아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두.”
  접속을 끊었다. 레이는 조금 전에 있던 시위현장을 떠올렸다. 시위대의 모습, ‘몬스터’, 충돌, 그리고 암흑. 시위에 많이 참가하진 않았지만 오늘은 너무 이상했다. 특히 ‘그물’같은 것이 덧씌워져 소멸되는 사람들과 순식간에 찾아온 암흑은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Callboy’라는 마녀도 소멸되던 것이 기억났다. 순간 레이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Callboy’라는 마녀는 ‘탈옥’까지 한 기술자였다. 그 소리는 아노미아만큼 뛰어난 해커란 뜻이었다. 그런데 위치가 발각되어 체포된 것이다.
  레이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파워슈트’검색.”
  홈컴퓨터가 ‘파워슈트’를 검색했다.
  조금전 시위현장의 구호가 생각났다.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철폐하라! 파워슈트 제한을 철폐하라!]
  스크린에 파워슈트 판매 사이트가 빼곡하게 펼쳐졌다.
  “두 번째.”
  레이의 음성에 검색된 결과 중 두 번째 사이트가 펼쳐졌다.
  스크린에 마치 전신갑옷처럼 생긴 장비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파워슈트. 고대 중세의 철제갑옷 같았다. 상반신이나 하반신만 있는 것도 있었고 전신이 다 있는 것도 있었는데 색상과 모양이 다양했다. 메탈느낌으로 번쩍거리는 것부터 무광택의 플라스틱같은 느낌까지. 화려한 광고문구가 각 파워슈트 위에 디스플레이되었다. 운동속도, 파워의 크기, 동력의 종류, 연료의 종류, 무게와 사이즈, 용도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어떤 것은 주문제작도 가능하다고 표시가 떴다. 경찰, 군인, 소방관이나 특수직업군이 아니면 남자는 착용할 수 없었다. 옷 형태로 제작된 보호 장비면서 힘든 일을 할 수 있게 기계와 인공근육이 조합된 기계였다. 종류에 따라서 반응속도와 능력이 달랐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지만 무척 비싼 고가의 장비였다. 가장 싼 거라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톨VTOL보다도 3배 이상 비쌌다. 비싼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남자들은 구입할 수 없었다. 범죄에 악용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초기 ONS가 세계에 퍼졌을 때 ‘난자’가 재료가 된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여자들이 납치당했다. 그러던 중 파워슈트가 처음 상용화되었는데 첫 사용 목적은 여자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워슈트를 착용하면 남자들의 주먹이나 칼, 종류에 따라서는 총탄도 막을 수 있었고 남자 성인 서너 명의 힘을 능가하는 완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파워슈트를 착용한 여자들이 남자들을 학대하고 있었다.
  레이가 말했다.
  “전투용.”
  스크린에 새로운 결과가 표시되었다. 좀더 육중하게 생긴 것들이 나타났다.
  [대표적 방탄소재인 다이니마, 케블라, 스타본드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매우 가벼우며 각종 총기류와 도검류의 공격으로부터 최고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또 듀랄루민 합금과 티타늄 합금의 이상적인 조합은 최고의 내구성과 운동능력을 선보입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소형 제냐 모터 40개가 최대 토크 30.8/1300(kg.m/rpm)이라는 놀라운 파워를 선보입니다. 기본으로 장착된 수소연료전지셀 외에도 옵션으로 가정용 전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그럼에도 전체 무게 80킬로그램이라는 초경량을 자랑합니다.]
  레이의 시선이 머물자 즉시 시선인식 센서가 주목한 제품의 홍보영상을 플레이시켰다. 레이의 눈앞에 은색과 선홍색이 어우러진 세련된 슈트가 천천히 360도 회전했다. 3D영상으로 보여지는 슈트는 아름다웠다.
  최대 토크 30.8이라면 1톤 트럭과 맞먹는 힘이었다. 가격은 무려 2억5천만 원. 엄청난 가격이었다. 난자 1개의 통상적인 가격이 5백만 원이었다. 레이가 팔려고 내놓은 난자가 20개니 원래대로라면 1억 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현재 9억 원까지 올라가 있었다. 파워슈트를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사실 난자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지 않았다면 레이는 파워슈트 같은 걸 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일단 살 돈도 없을뿐더러 특별히 위험을 느끼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이의 난자가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고가란 게 알려진다면 난자를 빼앗으려는 악한 자들이 떼로 공격해올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납치되어 난자만 채취되다가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채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곰처럼 그렇게 끔찍한 경우를 당하는 것이다. 꼭 그런 최악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오늘 있었던 시위에서 EMP가 터진 이상 정부는 아주 강경하게 나올 확률이 높았다. 파워슈트가 있으면 아무래도 도망치는데도 유리했다.
  레이는 제품들을 훑어보다가 자신의 신체치수를 입력했다. 키와 몸무게. 가슴과 허리, 엉덩이 사이즈, 팔다리의 길이를 입력했다. 마지막으로 말했다.
  “결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런 거액의 장비를 구입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레이의 입에서 결제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화면이 신용카드 결제화면으로 바뀌었다. 주문에 따른 주의사항이 팝콘이라도 튀어오르듯 펼쳐졌다. 고가의 제품이라 평상시에는 없는 신원확인까지 요구했다. 홍채인식과 DNA인식을 요구한 것이다.
  모든 확인이 끝났다. 레이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힌 레이가 결심한 듯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서예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허공에 사인을 마치자 레이의 사인이 계약서에 기록되었다. 감사하다는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배송일은 이틀 뒤였다.
  스크린을 껐다. 파워슈트를 주문하고 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파워슈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가장 믿을 수 있는 안전 장비였다.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조금 전에 있었던 시위 장면이 다시 생생히 기억났다. 단 것이 먹고 싶었다. 일어나 한쪽에 있는 싱크대에서 코코아를 찾았다. 문득 좁은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코코아를 홀짝거리면서 벽을 향해 말했다.
  “이사업체.”
  스크린이 펼쳐지며 이사업체의 리스트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전화 연결해.”
  통화음이 들리고 곧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희 업체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이사 예약요.”
  기계음이 업무를 처리했다. 예약일자를 잡고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안녕, 둥지!” 레이가 자신의 집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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