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8 by 비와이슬


  다양한 문장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진짜 불꽃놀이와 다른 점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상세계에서 홀로Holo로 만들어진 글씨는 허공을 수놓은 채 지워지지 않았다. 스위치를 끄기 전까지, 사용시간이 다 소비될 때까진 계속 표시되는 것이다.
  군중들이 플래시몹flash mob (플래시몹. 미리 정한 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약속한 행동을 한 후, 바로 흩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 행위)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가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수면에 파문이 일어나듯 행동이 전염되었다. 뱀파이어에서부터 애꾸눈 잭까지 온갖 다양한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춤을 추며 고함을 질렀다. 군중심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흥분과 열기가 전해졌다. 레이는 감각장비들을 꺼두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급기야 크게 흥분한 자들이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투영된 시위 문구 사이를 날아다녔다.
  아노미아도 흥분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레이는 마음이 무거웠다. 난자 경매 때문인지 예전처럼 흥분이나 고양감 같은 건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감각장비를 많이 꺼두고 한계 설정치를 낮춰둔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만 불안함이 마음 한 구석에 무거운 납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시위대의 배경음악을 뚫고 강력한 음성이 광장을 울렸다. 경찰! 그들의 메가폰 소리가 고막을 괴롭히겠다는 확고한 의도로 터져 나왔다.
  “즉시 소란을 멈추고 자신의 업무로 돌아갈 것을 명령합니다. 여러분은 Real World의 운영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 다수의 사용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즉시 해산할 것을 명령합니다. …….”
  그르르르르……. 진동. 지면이 흔들렸다.
  기름냄새. 디젤유가 타는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거대한 괴물이 형체를 드러냈다. 푸른색 장갑차. 정확히는 푸른색과 흰 줄이 그려져 있는 장갑차였다. 크기가 대형 포크레인의 두 배가 넘었다. 경찰 장갑차였지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해서 생긴 것은 투박했고 흉측했다. 최상단부에는 거대한 확성기가 전 방향을 향해 튀어나와 있었고 그 아래로 성게처럼 수많은 총신이 튀어나와 있었다. 고무충격탄을 쏘아대는 총구였다. 그 아래로 일시적인 시력상실을 일으키는 섬광 조명기가 곤충의 겹눈처럼 빽빽하게 밀집되어 몸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몸체 주위엔 시위자들을 밀어내기 위한 대형 블레이드가 불도저Bulldozer처럼 둘러져 있었다. 비행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경고방송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망할 멍게!” 아노미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정식 명칭은 ‘TM-207 시위진압선’이었지만 사람들은 ‘몬스터’나 ‘멍게’라고 불렀다. 몸체 주위에 주렁주렁 튀어나온 장비들이 흉측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가 너무 명백했지만 그럼에도 경찰이라고 푸른색과 흰색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그것이 뭔가 부조리한 느낌을 주었다.
  순간 허공에 시위 집행부의 문장이 떠올랐다.
  [동요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아직 우리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주장을 더욱 강력하게 외칩시다!]
  시위대 주변을 둘러보니 몰려든 기자로봇들이 보였다. 튀어나온 렌즈를 이리저리 돌리며 시위현장을 방송국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아직 위치를 못 잡았어요.”
  “알아. 헤매고 있는 게 보이는 걸.”
  아노미아의 말에 레이가 말했다.
  장갑차의 충격탄 총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수십 개의 총구가 물결에 휩쓸리듯 이리저리 왔다갔다 움직였다. 시위자들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조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위자들의 위치, Real World에서의 위치가 해커들의 방해로 아직 노출되지 않고 있었다.
  요란한 소음이 격돌했다. 장갑차의 확성기 소리와 그르릉 거리는 진동과 소음, 그들에게 대항해서 시위대들의 고함과 삑삑이 소리가 대항했다.
  흥분의 강도가 올라가자 시위대 곳곳에서 불꽃이 일었다. 화염병!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화염병에서부터 마법사 분장을 한 자의 손에 피어오르는 ‘파이어볼’까지 다양한 불법무기가 나타났다. Real World에서는 석기시대의 돌도끼에서부터 현실세계, 각종 판타지세계의 모든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파이어볼’도 그 중 하나였다.
  곧 펑펑 거리는 폭음과 함께 불꽃이 ‘멍게’를 덮쳤다. 장갑차 주위가 화염으로 뒤덮이며 검은 연기가 엄청난 기세로 하늘을 가렸다. 화려한 볼거리에 시위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낄낄대며 장갑차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욕을 했다.
  “저게 효과가 있는 거야?” 레이가 물었다. 레이는 시위 경험이 적었다. 장갑차가 불타오르는 게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아뇨. VR(가상현실)이잖아요. 경찰 장갑차를 조종하는 자들이 일부러 열기를 느끼는 센서를 켜놓지는 않을 테니 아무런 효과 없어요. 다만 볼거리로는 훌륭하죠. 화염병을 던지는 이들은 나름대로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고요. 냄새도 나고 열기에, 마음껏 폭력을 행사하는 거죠. 그러라고 있는 게 VR이니까. 하지만 시위대들은 죄다 감각센서란 센서는 다 켜두고 있을 거예요. 그게 훨씬 더 짜릿하니까요.”
  “너도?”
  레이가 묻자 아노미아는 대답 없이 그저 웃었다.
  “너도 한껏 즐기는 중이구나. 후후.”
  그때 불타오르던 장갑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시위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붙은 산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경고방송은 더욱 격한 어조로 해산을 명령했다.
  지지 않고 시위대가 구호를 외쳤다.

  [성전환을 허용하라!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 독재자는 물러가라!]

  여성이 권력을 잡은 후 성전환 수술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넌 어때? 성전환?”
  “전 별루.” 아노미아가 흥미 없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여자도 편하기만 한 건 아닌데.”
  “그래도 각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줘야죠. 이런 나라가 어딨어요? 마귀할멈(대통령을 뜻함)이 또라인게 분명해요.”
  “훗! 투표한 할망구들도 미쳤지.”
  “이 나라는 미쳤어요. 미쳤다구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레이의 말에 아노미아가 맞장구를 쳤다.
  성전환 금지법은 국민투표를 거쳐 결정된 법이었다. 거기엔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60대 이상 노인들의 찬성이 있었다. 노인들 중 5분의 4가 여자였다. 그들은 성전환한 여자를 여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정서적으로도 불쾌하게 여겼다. 성전환한 자들이 공공 목욕탕에 들어오는 것도 반대했다.
  그때 갑자기 시위대의 움직임이 변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위치가 파악됐나 봐요. 따라와요!”
  아노미아가 레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의 힘에 끌려 레이가 한쪽으로 뛰었다. 뛰어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시위대의 저항도 더 격렬해졌다. 더 많은 화염병이 던져졌고 연막탄까지 투척되었다. 곧 최류탄 냄새가 피어올랐다.
  투투투투퉁-!
  격렬한 소음 사이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컥-!”
  “아악-!”
  비명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던 아노미아가 욕을 했다.
  “충격탄이에요.”
  장갑차의 거대한 몸체에 튀어나와 있는 수많은 총신이 허연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작은 골프공만한 것이 시위대를 공격했다. 맞은 사람들이 비명을 토하며 꼬꾸라졌다.
  시위대가 위험을 느끼자 여태까지 따르던 지휘부의 지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장갑차의 총신이 공중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투투투퉁-! 달아나던 사람들이 고무충격탄을 맞고 지면에 처박혔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달아나는 사람들까지 쏘다니! 개자식들!”
  아노미아가 분노로 벌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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