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7 by 비와이슬


  등대 광장. ‘레알 월드’Real World 가상세계에서 중심지역할을 하는 광장이었다. 가로 250미터, 세로 200미터의 대형 광장으로 북쪽 가운데엔 옆으로 길게 늘어선 시청사 건물이 있었다. 시청사 오른쪽엔 고대 신전처럼 생긴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었고 시청사 왼쪽엔 고풍스런 둥근 지붕의 성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가상현실세계였지만 시 청사에서는 다양한 사이버 교육과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그림을 체험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는 기도와 명상, 상담이 이루어졌다.
  광장의 가운데에 둥근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분수 가운데엔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아주 높은 등대가 서 있었다. 가상세계니 정확한 높이 같은 건 의미가 없지만 대략 100미터 정도 높이에 폭은 겨우 50센티미터 정도였다. 마치 가는 기둥이 하나 서 있는 것 같았다. 등대의 표면은 차갑게 빛나는 금속재질로 그 표면에 각종 안내 문구가 표시되었고 10미터 마다 설치된 등대 조명이 회전하며 광장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광장 전체에 가로등이 서 있어서 조명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등대 조명은 하나의 볼거리로 광장을 비추었다. 빛의 색깔과 형태, 표시되는 문구도 요일과 시간, 이벤트와 행사에 따라 바뀌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등대가 Real World의 정중앙이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판타지 세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레이가 광장 남서쪽 구석에 있는 포털Portal에서 나오자 보이는 광경은 마치 거대한 헬로윈 파티가 열리는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마음에 드는 복장으로 차려입고 떠들었다. 비보잉을 하는 좀비부터 마법사, 카우보이, 로봇, 슈퍼맨 등 온갖 특이한 분장의 캐릭터들이 놀고 있었다. 모두들 손에는 시위에 사용할 홀로Holo를 들고 있었다. 홀로는 홀로그램으로 글씨를 만들어내는 손전등 같은 것으로 응원이나 콘서트현장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레이는 시위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넓은 광장 바닥 전체엔 흰 화강암이 깔려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사다리처럼 잿빛 대리석이 선을 그어서 구획을 나눠주었다.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레이는 수호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노미아를 찾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레이의 등 뒤에 있는 날개가 우아하게 펄럭였다. 가상세계니 다들 날 수 있었지만 시위를 위해 자제하고 있었다. 날아오르면 땅에 집결해있는 것보다 화면빨이 안 좋았다. 시야가 가리는 것이다. 뉴스를 찾아다니는 스파이더Spider(스파이더. 자동으로 하이퍼링크를 따라가거나 검색 엔진 검색을 위한 웹페이지를 색인화하는 프로그램. 여기서는 더 발전한 개념으로 정보를 찾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말한다.)나 기자로봇이 기록할 영상엔 땅에 모여 있는 것이 훨씬 그럴듯했다.
  ‘어디?’
  3미터 정도 높이의 허공에 떠서 주위를 둘러보며 통신기에 대고 물었다. 곧 누군가가 레이저를 쏘는 게 느껴졌다. 아노미아. 레이는 아노미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노미아는 섹시한 여자 산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오~! 나보다 더 예쁜데?”
  레이가 지면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아노미아는 그 말에 기분이 좋은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방긋 웃었다.
  “20분 정도 남았네요. 다른 지역에선 먼저 시작한 곳도 있구요. 벌써 정부에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들도 장벽을 치기 시작했구요.”
  그때 마녀 모습을 한 여자가 레이를 ‘밟고’ 지나갔다.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레이의 모습이 잠시 흔들렸다.
  “뭐야? 저런 나쁜, 벌레 같은 놈! 어휴, 무례해!”
  아노미아가 화를 냈다. 마녀 캐릭터가 레이와 함께 겹쳐졌던 것이다. 가상공간이니 보이는 모습들은 전부 전자신호에 불과하다. 네트워크 상에서 오가는 신호에 불과하기에 마녀 캐릭터가 레이가 있던 공간에 겹쳐서 같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마치 두 캐릭터가 혼합되듯 겹쳐지는 것이다. 그런 경우 서로 불쾌감을 느꼈고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고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공간이 겹쳐지는 일이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현실에서 모르는 사람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걸 꺼리는 것처럼 캐릭터 주위에 설정한 공간을 침범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게 Real World의 규칙 중 하나였다. 그런데 방금 지나간 마녀는 그 규칙을 ‘탈옥’한 자였다. 프로그램을 해킹해서 그 규칙을 마음대로 어기고 있었다.
  “어디나 저런 싹통바가지들이 있어요. 지만 탈옥할 줄 아나? 흥! 언니, 신경 쓰지 말아요.”
  아노미아가 투덜거렸다. 자신이 더 뛰어난 해커기에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전기자극은 꺼두었으니까.”
  “호호~! 대부분은 일부러 켜두고 있겠지만. 역시, 언니 센스는!”
  VR(가상현실)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옵션들이 등장했다. VR에서 느끼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캐릭터가 공격당하거나 넘어질 때 전기자극을 게이머가 직접 느끼게 하는 것에서부터 화학물질로 합성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만든 것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접속장비가 발달했다. 3D 입체영상은 기본이었고 거기에 촉각, 후각, 미각까지 더해주는 기계들이 발달했다. 그 중에는 뇌의 전기자극만으로 오르가즘과 비슷한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기계도 있었다. 고가품일수록 제공하는 감각의 수준은 뛰어났고 사람들은 그것에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했다. 중독의 문제로 인해 너무 뛰어난 기계들은 제작과 판매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아노미아가 말한 대로 시위에 참가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즐겼다. 그들은 모인 이들이 내뿜는 흥분과 향수, 화장품 냄새, 땀냄새를 이미 느끼고 있었고 곧 다가올 정부 로봇과의 결투에서 발생될 자극을 즐기기 위해 다양한 감각장비를 최대한 켜두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레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난자 채취 때문인지 좀 어지러운 것 같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느껴서 대부분의 장비를 꺼두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것도 자제하고 있었다. 멀미가 날 것 같았던 것이다.
  “저 마녀 입고 있는 옷은 에스메랄다야.”
  “꼴에. 훗!”
   레이의 말에 다시 한 번 마녀의 옷을 살펴본 아노미아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소위 말하는 명품 옷이었다. 가상세계니 당연히 실제로 제작된 옷이 아님에도 그 디자인만으로 엄청난 가격을 지불해야만 입을 수 있었다. 디자인 자체에 특허같이 엄격한 저작권이 붙어 있었고 서버 자체에서 자동으로 체크가 되기 때문에 불법복제가 어려웠다. 디자인 하나만으로 막대한 수입을 거두고 있었다.
  “왜 아는 애야?”
  “콜보이Callboy라고 지저분하기로 유명한 놈이에요. 실력은 있지만. 언니도 디자인한 옷 입고오지 그랬어요? 그럼, 인기 짱일 텐데…….” 아노미아가 속상한 듯 말했다.
  “그럼,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광고하란 소리니?”
  “아, 그렇지.”
  아노미아가 ‘이런 정신’하고 특유의 깜찍 애교표정으로 웃었다.
  레이의 직업은 애니메이터였다. 만화영화나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디자인하고 그들을 상황과 성격에 맞게 움직이는 일을 했다. 활달한 캐릭터는 걸음걸이도 활달하게, 늘어진 캐릭터는 늘어지게 움직이게 하고 다양한 재미있는 동작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을 했다. 캐릭터 디자이너의 역할도 같이 했기 때문에 레이가 디자인한 옷도 많이 있었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군중들의 행동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시위 지휘부가 음악을 틀었다. 비트가 강한 락음악이 배경처럼 깔리자 군중들의 머리위로 폭죽처럼 시위문구가 솟구쳤다.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하늘에 글씨를 만들었다. 불꽃놀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철폐하라! 파워슈트 제한을 철폐하라!]
  [태어난 게 죄인가! 1인당 4명의 노령 여성을 부양하는 현실이 말이 되는가! 연령에 따라 투표권을 차등화하라!]
  [성전환 허가를 철폐하라! 자유를 제한하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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