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6 by 비와이슬

2 시위


  소름이 돋았다. 가장 높은 클라이막스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남자의 크고 힘찬 폐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는 마력과 같은 힘과 관능적인 떨림으로 영혼을 파고들었다. 터질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카스트라토.
  남자면서 소프라노의 음역을 통제하는 자. 그의 목에는 아담스애플도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얼굴은 분장 때문인지 창백해서 사이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잔잔한 물결처럼 출렁이던 바이브레이션이 난폭하게 거칠어지자 여성 청중들이 기운 없이 탄식을 토했다. 목소리가 밀물이 밀려와 덮치듯 탄식을 쓸어버렸다.
  음악엔 실제적인 힘이 있다. 사람을 흥분하게, 때론 차분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카스트라토의 이름은 비(B). 그저 알파벳 B 한 글자였고 성도 없었다. 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은 그를 지켜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화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라고 느꼈다. 그녀의 손바닥에 습기가 배어 있었다. 옆에 있는 대통령실장에게 그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데리고 와.’ 대통령실장이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재선 대통령. 세계 최대 규모 제약회사의 대주주이자 강력한 리더쉽으로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여성. 여성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선언했고 그것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없었다.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속자가 없어서 그녀의 유언 내용은 온 국민이 궁금해 하는 비밀 중 하나였다. 올해 57살인 그녀의 이름은 장수진이었다.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했다. 마르고 갸름한 얼굴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이 빛났다. 많이 늙은 나이가 아님에도 머리칼은 순백이었다. 인자한 이미지를 위해 일부러 고른 색깔이었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강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풍겼다.
  그녀에겐 많은 정적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이 있었다.
  ‘여성의 지위를 바꿔놓은 사람.’
  대통령은 귀빈석에서 여성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카스트라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문득 카스트라토가 성불구로 자란 이유가 궁금했다. 저런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는 사춘기 이전에 불구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여러 이야기가 떠돌았다. 아들이 태어난 것에 화가 난 아버지가 고의로 저질렀다는 설, 사고로 다쳤다는 설, 어린 소년을 탐하는 여성들의 장난에 희생되었다는 설 등이 있었다. 카스트라토 본인은 거기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완벽한 외모와 마력을 지닌 목소리, 거기에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모든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확실히 인기 면에서 대통령은 그를 따르지 못했다.
  대통령은 그가 불구인 것이 안타깝다는 다소 감상적인 생각을 했다. 사실 그는 수많은 보맨Bo-man에 비하면 행운아였고 귀족이었다. 남자들이 성공한 분야는 운동선수, 군인, 기계와 로봇에 관련된 공학자와 수리공, 약간의 외과의와 약간의 요리사 외엔 없었다. 간혹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성과 별 차이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오직 작품에서 여성과 다른 강렬함과 공격성이 엿보였을 뿐이었다.
  대통령은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고는 그를 만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기대감 때문인지 미소가 떠올랐다.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오는 B는 생각 외로 키가 컸다. 호리호리하고 부드러운 몸매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다비드상 같은 균형미가 있었다. 강한 근육질의 남성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남자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싱그러운 하늘같은 고귀한 분을 만나 뵙게 되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영광입니다.”
  B는 지극히 차분한 음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미 많은 힘 있는 여성들을 경험해 본 탓인지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유행하는 장식체 인사를 건넸다.
  장식체는 새롭게 유행하는 말투였는데, 시적이고 화려하게 치장된 느낌을 주었다. 주로 돈과 권력이 있는 여성들이 사용했다. 그들은 간결하고 딱딱한 언어를 천박하다고 여겼다. 짧고 시간이 부족한 듯 말하는 건 가난하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것이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빠르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다. 장식체 말투는 지위를 상징하는 언어로 자리잡고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장식체가 번성하게 된 원인으로 두 가지를 들었는데, 여성이 권력층으로 등장하게 된 것과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넷세대들의 속성에 대한 피로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들이 관계성에 치중하는 특성과 심하도록 짧게 줄여서 말하는 넷세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행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하늘이 축복한 목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감격했습니다. 천사의 목소리가 이럴까요? 당신의 아름다움은 나를 부끄럽게 하는군요.”
  거추장스러웠지만 대통령도 장식체로 말을 건넸다. 귀찮았다. 허영의 배출일 뿐, 남자들의 교만과 뭐가 틀리겠는가? 허영과 교만. 모두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대통령은 어느 정도 유행을 따라줄 필요가 있었다. 일부러 기자들의 건수를 만들어 줄 필요는 없으니까.
  “저의 미천한 목소리가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아니에요. 당신의 아름다운 노래에 모든 스트레스가 햇살 앞의 이슬처럼 녹아버렸답니다. 그 아름다움을 청와대에서 다시 느낄 수 있을까요?”
  뜻밖의 말에 B는 가만히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인가를 가늠하려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덧붙였다.
  “각국의 외교관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오히려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가득합니다만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때 누군가 출연자 대기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문이 열리고 대통령실장이 들어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테러 경고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손이 팔걸이를 움켜쥐자 푸른 핏줄이 솟았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대통령 전용 비톨VTOL P-2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전후좌우로 경호원의 비톨들이 둘러싸고 인도했다.
  10인승 수직이착륙 비행카 P-2의 실내에서 대통령은 화난 기색으로 스크린을 주시했다. 스크린에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군중의 모습이 가득 보였다. 현실세계가 아니었다. 한국 최대의 가상세계인 ‘real world’에서 사이버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real world’는 전 국민의 반이 이용하는 최대 규모의 사이버 세계였는데 네티즌들은 과거 전통을 따라 ‘레알’이라고 불렀다.
  시위자들은 각기 불꽃으로 화려한 문장을 쏘아 올렸다.
  ‘남자도 인간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을 철폐하라!’
  ‘남자는 여자의 성노리개가 아니다!’
  ‘난자는 공공의 재산이다. 사유제도를 철폐하라!’
  대통령이 물었다.
  “인원은?”
  “대략 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추적은?”
  “하고 있습니다만 방해물이 많아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해산시켜!”
  “그게, 저 …… 곤란합니다.”
  “왜?”
  대통령의 음성엔 노기가 가득했다. 사이버세상이라고 해도 접속자 수가 너무 많은 탓에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시위자들은 강제진압과 신분노출을 피하기 위해 시위현장을 가상세계로 옮겼다. 모든 국민이 고정IP (Internet Protocol) 주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위자들도 추적당할 수 있는 IP주소를 교란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막는 방법은 시위가 벌어지는 가상세계의 특정구역(서버)을 차단해버리는 기술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장은 잔뜩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차단하면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공격을 하겠답니다. 현재 추적 중입니다.”
  대통령은 욕지기를 느꼈다. 깊은 숨을 들이쉰 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가짜일 가능성은?”
  “반반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EMP공격이 생긴다면 여론은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
  “예상 피해규모는?”
  “5개를 동시에 터트리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치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한 개당 반경 500미터는…….”
  대통령은 입을 꽉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침묵엔 엄청난 노여움이 배어 있었다.
  EMP는 강력한 전자기파 펄스로 목표지역의 모든 전자장비를 파괴한다. 인명피해는 조금도 없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오히려 가장 치명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전기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하다못해 마시는 물까지도 전기가 끊어지면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력과 전기, 전자장비가 파괴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일 정도로 흥분했다. 스마트폰, 컴퓨터, TV등 모든 가전제품과 전기, 전자부품을 사용하는 교통수단까지 모두 정지된다. 하늘을 나는 비톨VTOL은 모조리 지상으로 떨어지는 초대형 폭탄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하루 동안 정전이 되었을 때 폭동상황까지 갔던 일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전자제품 없이 살 수 없었고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정전이었다. EMP공격이 무서운 것은 전기를 발생시키는 발전기부터 모든 전자기기를 망가뜨려서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었고 테러공격을 가한 자들은 과거와 달리 상대적으로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었다. 인명은 상하지 않았다는 도덕적인 명분까지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최근 가정에 보급중인 수소연료전지가 폭발하는 일도 있었고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정전이 가져온 엄청난 경제적 손실에 묻혀 대부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불과 반경 500미터를 정지시킨다고 해도 그것이 전력 중추라도 손상시킬 경우 피해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대통령이 말했다.
  “주동자를 잡아. 와인 한잔 줘.”
  대통령실장이 사라지고 승무원이 와인을 가져왔다. 씁쓸한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대통령은 창밖을 응시했다. 수많은 네온사인과 조명이 밤하늘의 별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위가 주는 중압감과 책임감, 그리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분노로 몸이 떨렸다.
  상관이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책임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일수록 더 비난과 악의를 퍼부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모든 국민의 술안주거리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인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젊었을 때, 여직원으로서 겪었던 수모와 멸시가 떠올랐다. 자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도, 눈앞에 보면서도 남자란 족속들은 들어와서 소리쳤다. ‘직원 어딨어?’ 여자는 직원이 아니란 소리였다. 이런 것은 오히려 가벼운 것들이었다. 정말 심한 것은 가정과 남녀관계에서 나타났다.
  그런 모든 불평등을 극복하고 남자들의 오만을 꺾어주었건만 이제는 남자들을 위해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그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여자들까지 가세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한심한…….’
  자신이 얼마나 나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들.
  민주주의는 우매하다. 지능이 100인 사람과 지능이 80인 사람이 모여서 민주주의를 하면 결과는 항상 90보다 아래가 나온다. 두 사람의 지능이 합쳐졌으니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야 함에도 결과는 반대인 것이다. 하지만 약한 자들, 못 가진 자들, 약삭빠르지 못한 자들의 인권도 지켜주려면 민주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다. 결국 국민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목소리 큰 자들,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된 자들의 주장대로 흘러간다. 그들은 전부 국민을 위한다고 외친다. 다 말뿐이다. 국민 전체의 이익, 국가의 이익 따위는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이기적인 공약이 난무하고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몰려다닌다. 국가가 피해를 보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 이득을 보면 된다. 하지만 나중에 다 돌아오게 마련인데……. 조삼모사의 원숭이와 무엇이 다를까. 어쩌겠는가. 그게 민주주의인 것을.
  정의를 외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요구하면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정의’와 ‘진실’만큼 값어치 없고 헐벗은 단어도 없다.
  지도자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능하다고 욕을 한다. 강한 모습을 보이면 독재자라고 욕을 한다. 오직 기분에 따라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영웅, 지혜로운 왕의 이미지를 가져주기를 원한다.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하긴 각종 게임과 오락, 가상 세계에 있는 시간이 TV를 보는 시간보다 많아진 것이 옛날 아닌가.
  현실은 환상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청렴하고 도덕적이면서 한편으론 능력 있고 강력한 리더쉽을 지닌 대통령. 꿈일 뿐.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항상 이익과 피해를 보는 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치는 게임에 불과하다.
  분명한 건 멍청한 자들일수록 함부로 말하고 적을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분노와 함께 감상적인 기분이 들자 대통령은 허리를 펴고 앞을 주시했다. 언제나처럼 무시하면 된다.
  “아침에 정보국장 들어오라고 해.”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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