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5 by 비와이슬



  생각에 잠겨있는데 메신저가 비프음을 울렸다. 스크린을 보자 ‘오미경 이모’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1년 넘게 연락이 없다가 온 접속이었다. 레이는 접속을 허용했다.
  차분하고 수수한 정장을 걸친 여인이 나타났다. 펑퍼짐한 느낌의 코와 광대뼈, 눈썹과 눈꼬리가 축 처진 느낌을 주어서 아주 순한 인상이었다. 나이는 50대 정도 되어 보였다. 이름은 오미경.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너도 잘 지내지?”
  “네. 이모는 늙지도 않네요. 부러워요.”
  “아부도 할 줄 아는구나…….”
  여인은 싫지는 않은 듯 부드럽게 웃었다.
  “근데 어쩐 일이세요? 1년 넘었죠?”
  “그래, 그런 것 같네. 이 무심한 이모를 이해하렴. 늘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다보니 정신이 없구나.”
  “바쁜 건 알고 있어요. 무슨 일 때문에……?”
  레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편안하지 않았기에 말투는 딱딱했다.
  “어제 너 꿈을 꿨지 뭐니. 그래서 연락해봐야겠다 싶었어.”
  레이는 순간적으로 접속을 허용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웬 꿈? 레이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만 아니었다면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친구라는 것 때문에 이모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애정은 없었다. 단지 과거에 한두 차례 도움을 준 때문에 매몰차게 대하기는 곤란했다. 연락도 1년 넘게 하지 않다가 갑자기 꿈이라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여인은 레이의 불쾌한 듯한 기색을 모르는 것처럼 태연히 물었다.
  “정말 별 일 없는 거니?”
  “네. 아무 일 없어요.”
  “꿈이 하도 이상해서…… 네가 돈이 필요한지 자꾸만 이상한 곳으로 가더구나. 그 곳이 너무 무서웠어. 나쁜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네? …… 꿈은 꿈일 뿐이죠.”
  이모의 말을 듣는 순간, 레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마치 난자를 팔려고 내놓은 상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꿈 이야기는 안 그래도 무거운 기분을 더욱 어둡게 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여성을 납치하는 나쁜 놈들이 있으니 늘 조심하렴. 정말 필요한 건 없니? 오랜만에 너에게 뭔가 해주고 싶구나. 부담 갖지 말고 얘기해. 이모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단다.”
  “아니에요. 필요 없어요. 저도 충분히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거절의사를 밝히는데, 레이는 이모의 눈빛이 자신을 탐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순간적이었다. 다시 주의 깊게 그녀를 보았지만 아주 편안한 미소만 가득했다. 아무래도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여인은 조금 서운한 듯한 기색으로 말을 흐렸다. 레이는 자신이 너무 무례했나는 생각이 들어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옛날에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네요.”
  “섭섭한 모양이구나.”
  “아뇨! 그런 거 없어요.”
  강한 부정. 화가 나려고 했다. 차분하게 대답할 수도 있었건만 너무 강하게 이야기한 게 시인한 것 같아 언짢았다.
  “아직도 이모가 도우미를 끊은 것 때문에 화가 안 풀린 모양이구나.”
  오미경은 조금 미안한, 하지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어머니 친구로서 하실 만큼 하셨다고 생각해요.”
  레이의 말에는 친 이모가 아니니 그만 귀찮게 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오미경은 아는지 모르는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조금 둔한 지도 몰랐다.
  “이모는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섭섭하게 했다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정말로 괜찮아요. 이해하니까요. 죄송한데, 제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 너무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엉뚱한 소리만 했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네?”
  “애인 있니?”
  질문을 하는 오미경의 표정과 말투는 사랑하는 딸을 둔 어머니같았다. 하지만 레이는 왠지 기분이 나빴다. 그녀가 계속 자신을 탐색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거 없어요. 이제 끊어야겠네요.”
  “그래, 이모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렴. 애인은 여자가 좋단다…….”
  마지막 말이 더욱 신경을 긁었다. 레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접속을 끊어버렸다.
  짜증이 치밀었다. 심호흡을 했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다. 레이는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았다. 난자의 채취. 경매. 이상하게 치솟는 가격. 아노미아에게 장난을 치는 자. 거기다 갑작스런 이모의 연락.
  난자를 무사히 채취했다는 안도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노미아를 추적하는 자는 위험하다. 아노미아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건 자신도 추적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고 해킹실력도 장비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신경을 건드리는 건 이모의 꿈 이야기였다. 이성적으론 아노미아의 일이 가장 위험한 신호였지만 여성의 직관으로는 이모의 이야기가 가장 걸렸다.
  우연이 세 번을 넘으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지 않은가? 이럴 줄 알았으면 경매 마감일을 더 짧게 하는 건데……. 앞으로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사서비스업체에 이동을 신청할까? 이사 날짜는 경매가 끝나는 날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고민하던 레이는 너무 급하게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뭐든 급한 건 좋지 않다. 좀더 생각해보고 좀더 따져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조심하는 건 언제나 좋은 것이다.

  레이가 메신저를 끊자 오미경은 가소로운 듯 웃었다. 그녀가 있는 거실은 조금 전 레이의 스크린에서 배경으로 보이던 곳이 아니었다. 배경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보여준 곳은 평범한 사무실이었지만, 실제 그녀가 있는 곳은 엄청나게 화려하고 넓은 침실이었다. 침실의 한 쪽에는 킹사이즈보다도 커 보이는 원형의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녀는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었다. 걸친 옷도 정장이 아니라 농염한 느낌의 자줏빛 나이트가운 차림이었다.
  오미경은 왼손으로 목 뒤를 가볍게 만졌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마치 카멜레온처럼 움직였다! 퉁퉁하던 볼이 가라앉았다. 눈꼬리와 눈썹은 위로 치솟으며 광대뼈가 낮아졌다. 부드럽고 평범하면서도 둔탁한 느낌을 주던 50대 여인의 얼굴이 20대의 고혹적인 얼굴로 변했다. 갸름하면서도 아름다운 계란형의 윤곽에 눈썹은 꺾어진 곳 없이 부드럽게 아치를 그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세한 코와 가늘고 긴 입술이 매혹적이었다. 여인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의 암호명은 ‘미스틱Mistic’.
  정부기관과 군사용 목적에만 사용되는 극비물품이었다. 섬세한 인공근육이 수백만 개의 다발로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인공근육은 2000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구된 분야였다.
  인공근육의 목표는 지극히 단순했다. 전기 혹은 화학물질에 의해서 특정물질이 수축하거나 이완하기만 하면 되었다.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었는데,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미 겨우 여섯 개의 단백질로 만들어진 나노미터(십억 분의 일 미터)크기 모터가 인체에 존재하는 ATP(Adenosine Triphosphate : 생체 에너지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에 의해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플라스틱 공을 움직였다.(주1)
  미스틱 가면은 인체의 80여 개 안면 근육 중 주로 사용되는 57개 근육을 인공근육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미리 프로그래밍된 얼굴로 변형할 수 있었고 가면에 맞닿아있는 피부의 움직임을 센서로 읽어 표정을 만들어주었다. 주로 첩보나 군사적 목적에만 사용되는, 존재 자체가 극비인 물건이었다.
  오미경이란 이름은 가짜였고 실제로는 ‘마담 리즈’로 불렸다. 그녀의 실제 나이와 실제 외모를 아는 자는 극소수였다. 다만 가늘고 긴 손가락과 손등에 드러난 주름살은 60대 정도로 늙어 보였다. 주름살 제거 약물이 많이 있었지만 손에 계속 사용하기는 곤란했다. 손이 심하게 당기고 부작용으로 마비가 종종 오기 때문이었다.
  마담 리즈는 평상시 20대인 지금 모습을 유지했다. 얼굴이 변형되자 그의 품에 안겨있던 고양이가 그녀를 향해 조그맣게 울었다. 터키시앙고라 종인 것 같은데 눈동자의 색깔이 틀렸다. 고양이의 오른쪽 눈은 푸른색이었고 왼쪽은 노란색이었다. 오드아이(Odd-eye) 고양이는 주인과 잘 어울려 보였다. 변형된 리즈의 얼굴도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위험해 보이면서도 유혹적인 매력을 풍겼다.
  리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자줏빛의 실크 란제리에 감싸인 몸매는 아름다웠다. 피부는 그다지 탄력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늙어보이지도 않았다. 손을 제외한 피부만으론 정말 나이를 알 수 없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긴 갈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누군가를 불렀다. 콧소리가 조금 섞인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는 권위적인 힘을 느끼게 했다.
  “들어 와.”
  침실 문이 열리고 모델처럼 미끈한 남자가 들어왔다. 딱 벌어진 어깨와 큰 키, 조각 같지만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는 슈트차림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마담 리즈의 경호실장 겸 집사장 역할을 했다. 이름이 ‘준’이었다. 리즈가 말했다.
  “왜 돈이 필요한 지 알아봐.”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준의 말투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석상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무표정하고 무관심해 보였다. 리즈가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입찰자가 몇 명이라고?”
  “세 명입니다.”
  “누군지 알아보고 바로 보고해.”
  “예.”
  “그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미 최고 등급으로 지시해 놓았습니다.”
  “난자는 놓치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DNA정보도 전부 삭제해.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게.”
  “예.”
  “나가봐.”
  준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다 물었다.
  “새로운 아이들이 왔습니다. 들일까요?”
  리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 보고서도 가져와.”
  준이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리즈는 고양이에게 묻듯이 중얼거렸다.
  “끝낼 때가 된 것 같니?”
  고양이가 그녀의 손을 핥았다.
  잠시 후 그녀의 방에 어려보이는 남자 세 명이 들어섰다. 리즈는 고개를 들고 그들을 한 명씩 살펴보았다. 리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몸매가 보고 싶구나.”





주1)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 이인식 편, 김영사,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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