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난자) #3 by 비와이슬


  레이는 웃으며 서둘러 스크린을 껐다. 스크린을 끄자 비로소 모든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난자채취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피곤함이 조용히 밀려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돈이 필요하니까.
  이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조금만 돕는 것뿐이다.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마음이란 건 언제나 투명하지 않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섞여있는 깊은 우물 같으니까.
  남련의 대표. 그 사람의 얼굴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일부분이었지만 묘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과 턱, 뺨은 조각처럼 섬세한 느낌을 주었다. 면도한 푸르스름한 자국과 매끄러운 피부, 남성적인 완강함을 드러내며 물려있던 입술. 그 입술은 어린 레이를 향해 희미하게 움직이며 미소 지었었다. 이제는 오래되어 어디서 봤는지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었지만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은 어린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그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남련의 대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었다. 체포되는 것을 꺼려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12만 명의 남련 회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남자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 과거에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수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역사의 기록들은 끔찍했다. 어쩌면 남자들의 몰락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레이는 경험하지 못한 세대였고 지금은 그들이 학대받고 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지금도 여성을 납치하는 남자들이 간혹 있지만 극히 드물다. 모든 권력과 시스템을 여성이 통제하기에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특히 난자채취를 위한 여성납치는 사형이었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화학적 거세와 함께 징역형에 처해졌다. 오히려 지금은 여자들로 인해 불구가 되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것이면 족하지 않을까? 약한 자들은 도와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레이는 음식점에 베트남 쌀국수를 예약해놓고 침대로 들어갔다. 2시간 뒤에 배달시스템이 깨워줄 것이다. 이불을 끌어당기는 데 다시 복부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난자채취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건가? 불안이 거칠게 전신을 훑었다. 행복한 생각을 하려 애쓰며 잠을 청했다.

  “띵똥. 띵똥.” 벨이 울렸다.
  레이는 침대에서 몸을 빼 출입문으로 향했다. 도어 왼쪽 벽에 설치된 배달시스템의 디스플레이가 깜박거렸다. 물건이 도착했다. 배달시스템은 마치 벽에 드럼세탁기를 박아놓은 것 같이 생겼다. 레이는 하품을 하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 올렸다. 하품을 하니 정신이 조금 맑아진 것 같았다.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위험한 물질이나 잘못 배달된 물품을 검사하는 과정이었다. 아무 이상 없자, 도어를 열었다. 앞뒤가 부드럽게 둥근 모양을 한 1미터 정도의 캡슐이 들어 있었다. 캡슐을 열자 작은 용기가 그물망에 고정되어 있었다. 용기를 꺼냈다. 밀봉된 용기를 뜯자 하얀 김이 부드럽게 피어올랐다. 향긋한 음식냄새가 코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급히 용기에 붙은 젓가락을 뜯다가 멋쩍은 듯 웃었다. 캡슐을 돌려보내는 걸 깜박했다. 음식을 내려놓고 캡슐을 원위치했다. 문을 닫고 ‘배송’버튼을 누르자 빈 캡슐이 사라졌다.
  물품배달 시스템은 거미줄처럼 도시 지하를 가로질렀다. VR(Virtue Reality,가상현실)과 E-net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물건을 직접 사러 가지 않았다. 대형 쇼핑몰에서 유흥을 즐기다 물건을 구매해도 직접 들고 가는 대신 배달시켰다. 택배물건이 폭증하고 물류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하자 정부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 대형공항의 수하물 분류시스템과 대형병원에서 이용되던 서류전달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인데, 도시 하수도 망 옆에 물류터널을 같이 뚫었다. 택배캡슐은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로 도시의 지하를 돌아다녔다. 각 캡슐에는 고유한 택Tag이 붙어있고 물류터널의 허브에 있는 센서는 택을 읽고 자동으로 캡슐을 목적지로 이동시켰다.
  처음엔 신도시에 시범 설치되었으나 이젠 후진국과 산간벽지를 제외하곤 다 연결되어 있었다. 배달 비용은 초기 설치자금을 댄 물류기업과 정부가 나눠서 거둬들였다. 거기서 거둬들이는 세금의 규모가 엄청났다.

  레이는 쌀국수 국물을 훌쩍거리면서 E-net을 켰다. 경매 사이트를 찾아 자신이 올린 물품의 경매가를 검색했다.
“컥!” 급하게 입속으로 들이붓던 국수가 포탄처럼 튕겨 나왔다! 입이 딱 벌어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레이는 격렬한 기침을 토했다. 사래가 들렸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기침을 해대던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고함쳤다.
  “야호~!”
  7배! 자신의 난자 경매가가 통상가격의 7배까지 뛰어있었다. 그런데도 경매는 계속 되고 있었다. 서둘러 아노미아를 불렀다.
  “이거 왜 이래?”
  행복해 죽겠다는 듯 아노미아는 수염이 무성한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 모습으로 소리쳤다.
  “세 군데서 난리에요! 난리 났어, 난리 났어. 언니 난자에 금테 두른 거 아니에요? 사랑스런 레이 언니. 최고~!”
  흥분한 아노미아는 스크린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순간 못 볼 걸 본 듯 레이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스크린을 향해 허공에다 하이파이브를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가격은 계속 올랐다.
  흥분이 가라앉자 책상에 흩어진 국수조각을 치우며 물었다.
  “재벌이야?”
  “글쎄요. 호호호……. 분명한 건 Top class란 거예요! 크크크!”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덧붙였다.
  “기한을 더 잡을 걸……. 아쉽다!”
  경매 마감기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레이는 3일로 설정해 두었다. 일주일쯤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 상태로도 대만족이었다. 현재 가격은 7억 원까지 올라가 있었다. 1억 원 이면 최고급 비톨VTOL 한 대를 살 수 있고 7억 원이면 고급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다.
  액수의 규모가 상상되자 레이는 자신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30제곱미터 면적의 조그만 둥지. 조그만 창문이 겨우 하나 있었지만 항상 커튼을 쳐 두고 살았다. 그쪽으로 풍경이 좋지 않았다. 바로 앞에는 각종 전자제품의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폐기물 집하장 겸 고물처리장이었다. 여름이 되면 냄새도 심하게 났기 때문에 항상 닫고 살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화장장이 있었다. 높이 치솟은 굴뚝에선 항상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환경이 이러니 사람도 뜸했고 주위 풍경도 황량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물품배달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고 10분 정도 걸으면 지하철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부유한 사람들이 한적하고 자연이 아름다운 외곽에서 살고 돈이 없고 비톨VTOL (비행카) 같은 걸 굴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도심에 벌집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집에서 살았다. 레이는 외곽에 살았지만 부자들과는 전혀 다른 황량한 환경 속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하는 일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돈이 생긴 것이다! 새집을 가질 수 있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집을 임대할 수 있다. 토지나 집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급격한 인구감소가 발생한 이후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없이 정부가 모두 사들였는데 그 후로는 모두들 집을 임대해서 살았다. 또 집의 건축형태도 대부분 조립식 구조로 바뀌어서 컨테이너박스처럼 배달돼서 크레인이 고정했다. 사람들은 싫증이 나면 더 나은 디자인, 새로운 구조의 집으로 바꾸었다. 주택공급업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얼마나 아름답고 독창적인 디자인의 집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지 얼마나 많은 집을 건축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난자가 이렇게 치솟을 이유가 없었다. 호사다마……. 괜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난자의 가치가 폭등한 건 인체의 특정 장기를 괴사시키는 신종 질병이 유행한 때문이었다. AIDS의 치료백신이 개발되고 난지 불과 2년 뒤에 AIDS퇴치를 비웃듯이 신종 질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재생이 불가능한 인체장기를 괴사시키는 무서운 병이었다. 심장, 신장, 폐, 간 등을 파괴했는데 장기괴사증후군(Organs Necrosis Syndrome), 줄여서 ONS라고 불렀다.
  ONS는 잠복기도 비교적 길어서 전 세계에 퍼진 후에야 병의 실체가 알려졌다. 거기엔 발달한 교통과 이동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쨌든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다. 현재까지 유일한 대안은 새로운 장기를 공급하는 것뿐이었다. 난자가 재료였다.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병에 걸린 사람의 체세포 핵을 이식했다. 거기서 줄기세포주를 만들어서 인공장기를 배양했다. 하지만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과정도 성공확률은 겨우 4퍼센트였다. 4퍼센트의 확률로 성공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체세포를 제공한 이 외에 다른 사람은 장기를 이식 받아도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했고 다른 질병에 몹시 취약했다. ONS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체세포로 장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난자, 그것은 곧 생명을 의미했고 생존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권력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여성의 경우, 수정된 지 20주의 태아일 때는 7백만 개의 난자가 될 기초세포가 존재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 백만 개로 줄어들고 사춘기 때는 4십만 개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 겨우 4,5백 개의 난자만 성숙해지는 것이다.
  난자의 수요가 폭증하자 많은 난자를 성숙시키기 위해 무책임한 과배란 유도가 행해졌다. 아울러 빈곤국에서는 여아에 대한 납치가 폭증했다. 치명적인 결과가 뒤따랐다. 난소가 부풀어 오르면서 생명까지 잃는 일이 빈번해졌다. 비록 다른 질병에 비해 위험도가 낮다고 해도 난자를 채취하는 여성은 생명을 걸어야 했다. 초기엔 무리한 과배란 유도로 10퍼센트의 여성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고 납치된 여아들은 대부분이 사망에 이를 때까지 고통받았다.
  지금은 법률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부작용 발생확률은 5퍼센트였다. 20명 중 하나. 그 수치는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20명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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