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난자) #2 by 비와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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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64번째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레이는 자신의 손에 있는 야구공만한 금속캔을 조금 신기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난자가 들어 있었다. 마치 뭔가를 이루어낸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20개. 정확히 20개의 난자가 들어 있다. 크기와 무게 측면에서 비교하면 난자는 지구상의 어떤 물질보다 비싸다. 0.2mm에 불과한 난자 10개의 가격은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인 ‘비톨 VTOL (Vertical Take OFF and Landing) Car’ 한 대 값이다. 20개면 최고사양의 비톨을 살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더 높은 가격도 가능했지만 확률은 낮았다. 연예인이나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면.
  난자보관용 냉동캔을 돌려보았다. 뒷면에 그녀의 혈액형과 면역코드, DNA 코드가 담긴 칩이 붙어있고 그 옆엔 바코드가 길게 인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고 붉은 글씨로 ‘Ovum 20’이라고 찍혀있었다. 봉인도 완벽했다. 아직 한 번도 개봉하지 않았다는 표시였다.
  한동안 자신의 DNA 코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이는 캔을 티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거실 벽면 전체가 E-net을 표시했다. E-net은 인터넷의 다음 세대로 전력망이 합쳐진 인터넷을 뜻한다. 컴퓨터신호도, 전력도 같은 라인을 따라 이동했다. 전기신호에 컴퓨터신호를 비롯한 다양한 신호를 합치고 분리하는 기술 때문에 각 집마다 선 하나만 있으면 모든 연결이 가능했다.
  손가락이 글씨를 쓰듯 움직였다. 집 안에 있는 동작인식 센서가 명령을 해석했다.
  스크린이 ‘Ovum’ 사이트로 바뀌었다. 난자만을 거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 사이트.
  레이는 자신의 DNA코드를 스캔해 입력하고는 물품을 등록했다.
  ‘등록자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rainy’ 팝업된 창에 기록했다.
  ‘W-IP 비공개’ 체크.
  ‘개인정보 비공개’ 체크.
  ‘개별 접근 허용?’
  잠시 망설였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No’였지만 난자는 귀중품이다.
  ‘Yes.’
  마지막으로 확인을 클릭하자 그녀의 난자 20개가 상품으로 등록되었다. 레이는 메신저를 열었다. ‘아노미아Anomia’란 이름을 클릭했다. 잠시 후, 수염이 덥수룩한 살찐 얼굴이 나타났다.
  “별 일 없으시죠. 사랑스런 레이님! 어머,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여요! 아, 다크서클 봐. 어휴~!”
  아노미아Anomia란 남자는 정말 닉네임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산적처럼 덥수룩한 수염과 구렛나룻, 헝클어진 머리, 자다깬 듯 쳐진 눈……. 그럼에도 말투는 상당히 어울렸다. 마치 상냥한 여성이 말하듯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억양까지도 노래하듯 말했다. 이름은 윤상명. ‘남성권리연합’의 회원이었다.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어머어머, 미안미안. 자꾸 습관이 되어서 그만…… 훗! 내 정신 좀 봐. 사람들에게 연락은 다 했답니다. 저, 잘 했죠? 오호호호!”
  Anomia는 양손을 호들갑스럽게 흔들며 이야기했다. 손 모양이 발레리나의 손동작을 보는 것 같았다. 레이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웃었다. 레이가 물었다.
  “찾아봐달라는 건 어떻게 됐어?”
  “흠, 아직까지는. 쪼금 더 기다려 봐야 해요. 이곳저곳 부탁해놨으니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에요.”
  “알았어. 계속 수고해줘.”
  “네~에. 곧 대령합죠~!”
  “아, 방금 20개 올렸어. ID는 rainy.”
  “우후~! 20개나요? 이상은 없는 거죠?”
  스크린의 남자는 급히 손가락을 지휘하듯 움직였다. 경매물품을 찾아본 그는 미소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어머, 요기 있네. 잘할게요. 염려는 안 하셔도 돼요.”
  “그래, 수고해.”
  “레이님! 아차! 이런 정신, 언니!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언니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난 정말 못 견딜 거야! 언니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수염은 안 깎고 두는지가 정말 궁금했다. 전형적인 ‘보맨’의 말씨와 행동을 하면서 수염은 잔뜩 기르고 있다니……. ‘보맨’은 여성화된 남성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모계사회를 이루는 영장류 ‘보노보Bonobo’에다 ‘맨man’을 합성한 말이다. 아노미아Anomia, 윤상명은 수염으로 남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은 ‘흄hum’이라고 불렀다. 휴먼Human을 한음절로 줄여버렸다. 즉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여성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woman’이라는 두 음절 영어는 오래된 사전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고어였다. 성姓도 여자와 남자 둘 중에 선택해서 썼다. 아이들이 선택했다. 그럼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비율은 대체로 절반을 유지했다.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이 아버지가 더 많은 추세라 아이들이 아버지를 더 친근히 여겨서인지 비율은 대체로 절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레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천사를 직접 본 기분이 어때?!”
  “어멋?”
  아노미아가 못 견디겠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그가 불만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언니에겐 왕가王家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해.”
  “죽을래?!”
  왕가의 피. 아노미아는 레이가 공주병이 분명하다고 놀리고 있었다. 레이가 험악한 인상을 쓰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생김새와 달리 아노미아는 순하고 순박했다. 레이의 위협에 아노미아가 찔끔하는 표정으로 기죽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언밸런스하면서도 귀여웠다.
  “내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
  “응응!”
  “말해줄게.”
  아노미아의 눈이 동그래지며 레이의 말을 기다렸다. 레이는 위험한 난자채취로 벌어들인 돈 일부를 남성권리연합을 위해 기부할 것이다. 그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 학대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그거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당연하죠.”
  “그래. 개나 고양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돌봐줘야지. 마찬가지야. 학대받는 거 불쌍하잖아? 안 그래? 남자들이 맨날 얻어맞아서 부러지고…… 그렇게 사는 거, 학대받는 거 불쌍하잖아? 안됐잖아? 그러니 당연히 도와야지? 맨날 노리개 취급이나 당하고 정말 안됐어…….”
  레이의 말에 아노미아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구겨진 인상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 붉으락푸르락했다.
  “언니-!”
  “아~씨, 깜짝이야.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언니, 지금 남자가 개나 고양이랑 똑같다고 하는 거잖아요?! 우이씨-!”
  “야, 내가 언제 그랬어?”
  “그게 그거지. 언니까지 정말 이러기에요? 언니까지 우리를 놀리다니……. 언니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흑……!”
  레이는 ‘앗, 뜨거라!’ 싶었다. 계속 놔둔다면 아노미아는 눈물까지 흘릴 것이 분명했다. 만약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훗! 수염이 덥수룩한 산타 같은 얼굴이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웃음을 참지 못할 게 분명했다. 눈물 흘리는데 자기가 웃으면 그는 상처받았다고 꽤나 오랫동안 징징거릴 것이다.
  “아, 미안, 진짜 미안하다. 화 풀어. 언닌, 그냥 남자가 불쌍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짜야. 제발, 내 말 좀 믿어라. 후……. 야-! 언니, 오늘 무쟈게 피곤한데 너까지 이러기야?! 내가 오늘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 채취한 거 알아, 몰라? 너까지 이럴래?!”
  레이는 안 되겠다 싶자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 아노미아가 그제야 좀 화가 풀린 얼굴로 돌아왔다. 레이가 오늘 난자를 채취한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건 위험한 일이니까.
  “좋아요. 화 안 낼게요. 그 대신 말해줘요. 왜 우릴 돕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궁금해?”
  레이의 물음에 아노미아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는 덜 풀렸지만 꼭 듣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휴~! 좋아. 말해줄게. ‘남련(남성권리연합의 준말)’ 대표 있잖아?”
  “어, 어! 언니가 대표를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아노미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래?”
  “대표를 알아요? 진짜로?”
  “나도 몰라.”
  레이의 시큰둥한 말에 아노미아는 실망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화 나는 모양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럼?”
  “그러니까 그 신비에 싸인 대표를 꼬시고 싶어. 어때? 좋은 생각이지 않냐? 남련의 대표를 내 손에 넣으면 남련의 모든 남자들이 날 따를 거 아니니? 남련 소속 모든 남자들의 대모가 되는 거야? 멋지지?”
  “뭐야 뭐야, 언니~~~!” 아노미아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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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ealove 2012/12/07 08:53 # 답글

    오~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게다 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SF이군요^^
    난자... 왠지 무시무시할 것도 같고.... 암튼 응원합니다!!
  • 비와이슬 2012/12/07 16:18 #

    반가워요. 레아님.^^
    여전히 블로깅은 활발하시더군요.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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