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EGG (난자) #1 by 비와이슬

1 난자(卵子)의 가치



  건물은 둥근 공을 반 잘라 엎어놓은 것 같았다. 둥근 돔 형태의 진료센터는 편안함을 강조하기 위해 연한 연두 빛으로 밝게 빛났다. 건물 외벽의 대부분은 멀티글라스로 채워져 있었다. 액정기술을 응용해서 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유리. 오후 무렵엔 흔히 붉은 색 계열로 설정해 놓는데 진료센터는 연두색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게 찾는 이들이 더 편안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기분 탓인지 칙칙해 보였다.

  [ONS 장기괴사 증후군은 예방이 최선입니다.]

  [외출 후에는 꼭 손을 소독합시다.]

  [불법 난자 거래를 근절합시다.]

  멀티글라스 위로 보건국의 홍보구호가 반복적으로 표시되었다.

  레이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벌써 대여섯 차례 오가는 것도 성가신 일인데다 좌우 양쪽 하복부가 가끔씩 아팠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기분이 언짢은 탓인지 레이는 치렁하게 풀어헤친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하얗고 투명한 목줄기를 타고 내렸다. 차가운 느낌에 살짝 미간이 애교스럽게 찡긋 움직였다.

  165정도 되는 키에 조금 마른 몸매. 약간 중성적인 느낌이었다. 어린아이를 연상케 하는 볼록한 볼과 도톰한 입술이 꽤나 예쁜 얼굴이었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지만 요즘은 여성의 얼굴만으로는 나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 청바지에 굽이 없는 단화. 위에는 하늘색의 광택이 있는 폴라티를 걸쳤다. 전체적으로 수수했는데, 막 10월에 접어든 지금 폴라티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레이는 조금 더운 듯 폴라티의 목 부분을 가볍게 당겼다. 손이 스치듯 턱 아래를 스쳤다. 턱 아래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가늘고 긴 선이 있었다. 성형수술의 흔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도드라졌고 너무 길었다. 다친 흔적 같았다.

  인구가 줄은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여서인지 진료센터 진입로는 한산했다.

  진료센터의 두꺼운 유리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출입문의 오른쪽에 ID체크기가 조금 도드라져 있었다. 체크기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긴장으로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흰자위는 특이하게 아주 엷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았다.

  왼 팔목에 끼워져 있는 팔찌를 체크기에 갖다댔다. 팔찌는 엷은 금색으로 빛났다. 정열적인 붉은 색의 패턴이 조각되어 있어서 세련돼 보였다. 곧 유리문에 문자가 나타났다.

  ‘송여지 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레이의 본명은 송여지宋餘地. 레이는 ‘rainy1225’라는 네트워크 상에서 쓰는 ID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레이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쉽게 짐작하겠지만 학교 다닐 땐 ‘송아지’라고 놀림 받았다. 다른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었고 그 유혹이 때론 강렬했지만 아직까진 참고 있었다. 대신 ‘레이’라는 닉네임을 이름처럼 사용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이름보다 닉네임을 사용했다. 닉네임은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이니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기 마련이었다.

  유리문이 양쪽으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소독약 냄새.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앞쪽의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남자였지만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는 직업적인 친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리곤 곧 자신이 열중하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진료센터에 있는 유일한 정식 직원이었다.

  레이는 걸음을 옮기면서 요즘은 모든 남자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스러운 말투, 근육이 별로 없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매끄러운 피부. 거기에 처음 본 사람에게 친근함을 강조하는 미소까지. 전형적인 ‘보맨Bo-man’이다. 여성적인 남자를 일컫는 합성어다.

  옛날엔 거칠고 투박하고 사나운 남자들이 흔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운동선수 외엔 보기 힘들었다.

  ‘저 남자도 여성호르몬을 맞나?’

  흥, 무슨 상관이야. 레이는 바닥에 깔린 타일에 점등되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화살표는 그녀의 걷는 속도에 맞춰 켜지며 배정된 시술실로 안내하고 있었다. 시술실로 가는 한쪽에 자동청소기를 정비하는 남자들이 보였다. 청소기를 점검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용직. 허드렛일은 모두 남자들이 한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시술실로 다가갈수록 작고 야무진 손바닥엔 땀이 차올랐다. 본인도 모르게 연신 조물닥 조물닥거리다 손에 난 땀을 옷에 문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 진료센터에 왔을 때는 배란촉진 주사제와 초음파검사를 받기위해 왔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다. 23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채취하지 않았다. 그건 몹시 특이한 경우였다. 여자들 대부분 성년이 되자마자 난자를 채취했다. 레이도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의료에 관련된 모든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왜 자주 생각나는 것일까? 지금도 두려움이 밀려왔고 그 때문인지 몸이 굳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고 어깨까지 불편함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잊자. 잊어버리자.

  의지적으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하자 언젠가 들었던 2000년대 초기의 끔찍한 난자채취 과정이 기억났다. 그땐 볼펜심만한 주사바늘로 난자를 채취했었다고 한다. 부분마취를 했다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질벽을 뚫고 복강을 거쳐 소장과 대장을 피해 난소로. 지금은 신소재와 기술의 발달로 바늘을 사용하지 않았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합병증!

  배정된 시술실 앞에 오자 레이는 또다시 옷에 손을 닦았다. 심호흡을 했다. 출입문 옆에 채혈기가 놓여 있었다. 지문감식기처럼 손가락을 올리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다. 집게손가락을 올렸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가 방울져 흘렀다. 옆에 있는 1회용 소독솜을 집어 비닐을 벗겼다. 솜으로 누르는 듯 마는 듯 시선은 결과를 기다렸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금속 출입문에 긴 글이 표시되었다. 시술이 시작되기 전 호르몬의 분포와 농도를 살펴서 시술에 적합한지 검사 중이란 내용이었다. 레이의 분홍빛 입 꼬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비웃음 섞인 비음이 튀어나왔다. 호르몬검사와 마취제에 대한 알레르기검사, 신체 이상반응 검사는 이미 집에서 마쳤던 것이다. 실상은 ID카드를 변조해서 들어오는 불법판매자를 가리기 위한 DNA검사였다.

  복도 벽면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조그만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느새 시계추처럼 다리를 흔들고 있었지만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벽면은 합성나무로 마감되어 있었다. 셀룰로오스로 만든 인공목재. 편안함을 위해 사용된 것이지만 왠지 천연목재와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시트지를 붙인 MDF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순간 레이의 부드럽게 호를 그린 눈썹이 가운데로 쏠렸다. 아랫배에서 둔하지만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통증이 빨리 사라지기를 빌었다.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드물게 난소가 너무 커져서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었다. 불안해지자 침이 말랐다. 혀로 입술을 축이며 중얼거렸다.

  “이십 분의 일에 불과해. 난 운이 좋을 거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벨소리가 들렸다. 시술실의 문이 열렸다.

  “송여지님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기계음이 거슬렸다.

  “시끄러!”

  괜히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고 안으로 향했다.

  모든 옷을 벗고 헐렁한 수술복을 입고 시술대에 누웠다. 게의 다리 같은 기계가 한쪽 팔을 시술대에 고정시켰다. 센서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이마, 가슴, 팔…….

  숨소리가 화가 난 들소처럼 거칠어졌다. 겁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무서워하는 자신이 싫었다. 창피했다. 걱정과 불안은 언제나 증폭된다.

  모든 것이 기계로 이루어진 시술실. 불안할 이유는 없다. 없어. 없다고……!

  모든 시술과정은 촬영되고 기록된다. 안전을 위해서도 난자가 빼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전문의가 원격으로 연결되어 상황을 통제한다. 치료센터는 정전에 대비한 발전시설도 있다.

  불이라도 나면? 그땐…… ‘보맨Bo-man’이 있잖아!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아무 하는 일 없는 남자. 그는 분명 한 번도 심각한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심박수와 호흡이 빨라지자 기계음이 들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편안한 마음을 가지세요. 염려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현재까지 4,763명의 여성이 아무런 문제없이 시술을 끝마쳤습니다.”

  마지막 말이 더 신경을 긁었다. 4,764명 째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0으로 초기화되는 거야?

  “빨리 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네. 주입합니다.”

  조그만 권총같이 생긴 기계가 고정된 팔을 향해 다가왔다. 마취제. 김빠지는 듯한 칙 소리와 함께 레이는 정신을 잃었다.
마취에 대한 확인절차가 끝나자 시술대의 다리 부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다리를 고정했다. 그리곤 시술대가 두 개로 분리되었다.

  0.5mm 두께의 흡입기 머리 부분이 다가왔다. 액체에 닿으면 부드러워지는, 가는 튜브에 연결되어 있었다. 흡입기가 위치를 잡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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