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명숙의 선택 - 여성문제 카운셀링. 너무 원론적. by 비와이슬

김신명숙의 선택 - 6점
김신명숙 지음/이프(if)


여성학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이 책이 비교적 여성학 분야 서적 순위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길래 구입했다.
음, 좀 읽어보고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다.

난 남자니까, 남자로서 느끼는 시각이 분명 존재할 것이니 가능한 객관적으로 여성의 입장을 생각해보려고 애쓰면서 보고 있다.

가장 먼저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책은 여성 개개인이 질문한 내용을 저자가 답변해주는 형식이었다. 카운셀링 책인데, 그런 줄 알았으면 안 샀을 것이다.

읽으면서 계속적으로 느끼는 것은, 저자의 답변이 지극히 원론적이고 이상적이란 느낌 뿐이다.
사실 여성들은 대부분 여성으로서 느끼는 문제와 불공평한 대우, 억울함을 느끼는 영역 들에 대해서 정리가 되어있던 안되어있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자들도 일부는 알고 있을 테고....

미혼모로서의 두려움,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 육아와 가사 등등 많은 문제에서 어떤 게 과연 옳고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다만 사회와 환경, 즉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파워 앞에서 저항하거나 이겨나갈 의지나 용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저자의 답변처럼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답변 밖엔 해줄 수 밖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두개 인용해본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버리고 대신 아이를 믿으세요. 아이는 모성 상업주의가 조장하듯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텅 비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부모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충분한 사랑만 받는 다면 제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제 힘으로 꽃 피울 수 있고 웬만한 역경 정도는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으로도 쓸 수 있는 경이로운 생명체이니까요.] - p. 41

부모에게서도 충분한 사랑을 받기 힘든 세상 아닌가? 과연 다른 사람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지? 씁쓸하다.


[또 남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을 드러내기도 하고(히스토리 -> 허스토리, 삽입 -> 흡입, 폐경 -> 완경, 매춘 -> 성매매, 미혼 -> 비혼, 걸레 ->성적으로 활발한 여성, Mr에 대한 대칭으로서 Ms 등), 여성을 억압하는 규범적 언설들을 뒤집기도 했습니다(여자들은 위험하니까 밤늦게 다니면 안된다 -> 밤늦게 다니지 말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가해자인 남자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 ->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 등),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 ] p. 54

위의 새로운 표현들을 보다가 몇 개는 솔직히 웃겼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여남관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남녀'란 단어대신 '여남'이라고 줄기차게 쓰고 있는데, '부모'같은 단어는 그대로 놓아두었다. 좀 안쓰럽기도 했다. 김신명숙이란 이름에서 '김'이 아버지 성인지 어머니 성인지도 궁금했다.

언어가 바뀌면 현실이 바뀔까? 난 회의적이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언어 자체가 가지는 힘과 이미지도 분명 있다. 하지만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현실이 바뀔까?
문득 '난봉꾼' 같은 남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가 궁금해졌다.

그 외에도 역시 성적인 담론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 보았던 것과 별로 다른 것도 없었고.......
답변의 끝에 항상 표기하는 '사랑하는 언니가'라는 표현은 왜그리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지 모르겠다. 답변이 너무 원론적이고 이상적이라 그런걸까? 아니면 저자 자신의 욕망이 너무 뚜렷이 드러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 자신의 욕망이다. 저자 스스로 자신은 여신이 좋다고 여신의 욕망을 자신에게서 만나고 싶단다. 책 사이 사이에 인도인지 암튼 여신의 일러스트 같은 게 삽입되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
요즘 세상은 욕망에 충실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라고 암시하고 있다.

저자의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뀐다고 모든 여성이 만족할까? 욕망은 결국 이기적일 뿐이고 부딪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성별을 떠나서 모든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길 원하고 그것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저자의 욕망이 아닌 사랑이 드러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하긴 요즘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흔해빠진 단어가 '사랑'과 '정의'겠지만....쩝.

그리고 '아주 작은 차이'와 다른 느낌이었다. '아주 작은 차이'의 저자는 정말 자신이 고통을 깊이 체험한 경험이 묻어난달까 그런 느낌이라면, 이 책은 그저 이론적인 지식의 현란한 나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별로였다.

누군가 그렇게 비난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글을 보고서 욕망인지, 개인적인 느낌으로 판단할 수 있냐고.......
글과 말에서, 그 속에 담겨진 저자 혹은 화자의 마음도 언제나 느껴진다. 안 그런가? ㅎ




덧글

  • realove 2008/07/11 08:24 # 답글

    완성도나 접근 방식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여성서들은 이제 초반을 지난 단계... 일단 화두를 던진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일단 소수라도 이렇게 남자분들이 읽기 시작한다는게 고무적이라 생각^^
  • 비와이슬 2008/07/11 15:03 #

    ㅎㅎ 전 자료로 참고하기 위해 보는 중이라죠. ㅋ ^^;;;
  • 물빛물고기 2008/07/11 14:04 # 답글

    모부.....

    음.?!
  • 비와이슬 2008/07/11 15:03 #

    ^^ 너무 덥네요. 건강한 여름날 되세요~!
  • 몽상쟁이 2008/07/11 23:59 # 답글

    언어에 대한 언급은 페미니즘의 언어학적 모티프 - 소쉬르, 혹은 여타 구조주의 같은 - 때문인 듯합니다. 저게 제대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는 그냥 언급하는 자체로도 의의가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저 부분에 대한 비와이슬님의 논지와도 같은 비판은 20세기 중기 이후의 논문을 보면 종종 있어왔던 것 같구요. :) 예전에 한국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굉장히 실망해서 페미니즘을 조금 공부해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 다만, 한국에 계시는 주류들의 역량이 문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직은 불안한 게 문제지만요. ㅋㅅㅋ
  • 비와이슬 2008/07/12 00:02 #

    익숙한 단어들도 있지요. 성매매 같은 건 이제 널리 쓰이니까요. ^^
    근데 진짜 황당한 단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런 단어는 오히려 역효과가 있지 않을 까 싶어요.
  • Nate River 2013/12/12 21:41 # 삭제 답글

    그렇게 따진다면 여남관계, 모부 또한 남성 차별 아닌가?
    이 단어는 짝수개의 단어라서 어떤것이 반드시 앞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 것을 차별이라고 소리지르며 달려들어 바꾸려고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댓글 입력 영역


book